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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32

위로 20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인터넷 포털은 며칠 째 바이러스 뉴스로 한가득이다. 확진자가 추가될수록 공포도 커진다. 지하철, 버스, 거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류장에 버스가 이미 와 있다. 열심히 뛰어 버스에 올랐다. 헐떡임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숨을 꽉 막고 있는 마스크 때문이다. 심장이 뛰는 횟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쿵쾅댄다. 버스 안과 밖의 기온차 때문인지 뿌옇게 변한 안경이 답답하고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안경의 김서림이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여기저기 윤곽 정도는 보였는데 몰아 쉰 숨 때문인지 창 밖 풍경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닦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는 사이 쓱 쓱 스.. 2020. 2. 6.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날들 유난히 쌀쌀한 아침이다. 마스크 틈새로 스멀스멀 오르는 입김이 안경알을 뿌옇게 한다. 밖으로 나오니 따뜻해진 햇볕을 못살게 굴기라도 하는 듯 바람이 차고 세다. 청바지 안으로 관절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몸은 정직하다. 요즘은 슬럼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의욕은 어렵게 생기고 빠르게 사라진다. 불안과 초조함은 3분 짜리 가십에 자꾸 나를 던져 넣는다. 원래는 긴 활주로였고 잘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바탕 모래바람과 폭풍우가 일었고 출발과 끝, 과정이 모두 엉망이 된 느낌이다. 삶은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1차원 평면의 삶이 느닷없이 3차원으로 바뀐 것 같다. 지금까지 1차원을 점을 찍으며 2차원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 2020. 2. 4.
당신 덕분에 전화 목소리로도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사는 것이 고단해도 바닥을 치고 힘을 내볼 수 있는 여력은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다. 그런 관계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대가없이 이해하고 호의를 배풀어주는 관계는 보잘 것 없는 방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다. 무심하지만 다정했던 체온은 삶의 이유로 충분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밤이 내리면 벽돌 한 장 쓸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차피 내일은 오지만 어쨌든 지금은 춥고 어두운 밤이다. 매일 걷던 길도 때론 쓸쓸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목구멍을 넘기는 밥이 이렇게 하기싫은 일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던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지면 걸음을 멈추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실컷 울다 비벼 닦은 눈물은 버쩍 .. 2020. 1. 30.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글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 남에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좋은 글은 내 생각과 경험이 독자의 필요와 만나는 글이다. 독자의 필요는 지식일 수도, 영감일 수도, 문장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내가 잘하는 구간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써보고, 반응을 보고, 다시 쓰는 것뿐이다. 꾸준함은 깨어있을 때 동작한다. 매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심스런 마음이 앞선다. 마치 깨끗한 방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다. 성장의 욕구와 유지의 강박이 충돌한다. 일단 방을 어질러본다. 어질러진 방은 때론 마음의 안정을 준다. 지금 나의 시도가 현상을 망치지 않기 때문이다. 뭐가 되었든 좋다. 한 글자 먼저 눌러야 변화가 생긴다. 지금 이 블로그는 나에게 어.. 2020. 1. 18.
나는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아빠 오늘 회사 안 가?" 어쩌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도 금세 뒤틀린 일상을 눈치 챈다. 평범함이 깨졌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갈 곳이 있으며 출근하고 퇴근하는 하루의 반복이 주는 평화로움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문득 회사를 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베이스캠프 없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질문과 답이 뒤엉켜 풀 수 없게 된 생각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창 너머 거리를 본다. 분주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은 각자 길을 가고 있다. 껌뻑이는 점멸 신호는 역할을 하는 둥 마는 둥 늘 그 자리다. 회사는 상당히 괜찮은 갑옷이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좋은 무기로 최대 효율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며 무형의 신용을 만.. 2020. 1. 14.
오늘 하루 어땠나요. 갑자기 글쓰기가 두렵던 때가 있었다. 아니 굳이 글쓰기라 특정지을 필요는 없겠다. 상실의 시기엔 무엇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는 사이 찬란했던 봄이 지났고, 설레는 맘은 기억 속으로 잊혔다. 뜨거운 여름이 오기도 전에 괜히 겨울 걱정이 된다. 고질병이다. 어쩌면 이번엔 더 현실적이라는 점은 좀 달랐달까. 다시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계절을 맞지 않았으면 했던 바람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달리 할 말이 없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중고 냉장고의 소리가 없었다면 시간이 가는 것조차 몰랐을지 모른다. 초록의 잎은 밤의 가로등 아래선 환상적이다. 저 모습이 영원할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초초하게 게으름을 피웠나. 몇 번의 소나기가 내리고 맑은 하늘이 왔다 가면 어느새 낙엽이 질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 어떤 .. 2019. 9. 26.
눈물샘 “새 울음소리가 들려” “새는 눈물을 안 흘려. 그러니까 짖는 거지” 이런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좀 우습기도 하고, 새가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하는 괜한 궁금증도 일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지는 감정, 그러니까 울음 안에서 발산되는 슬픔과 기쁨을 대표로 하는 아픔, 그리움, 미안함, 행복함, 감격 따위의 수많은 감정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걸까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울지 않는 것이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쩌면 매일 우는 새를 곁에 두고도 눈물샘이 없다 생각했던 건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몇 개월 전 아는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조금 늦은 때 결혼한 이 부부의 결혼식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성숙해진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2019. 9. 26.
긴 여름날의 끝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지났다. 찬바람이 불고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그랬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연꽃단지에서 만난 가을 연잎은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처음엔 쭉쭉 뻗다가 기세 좋게 올라선 연대는 축 늘어진 연잎을 겨우 떠받치고 밑에서 다시 얽히고설켰다. 아무도 이 난감한 상황을 정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한 해를 정리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남아있지도 않다. 반대편에선 연근 수확이 한창이다. 유일하게 생기가 돌며 분주하다. 누구라도 치열했던 흔적 뒤엔 연근과 같이 스스로의 결실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니 섣불리 누구를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위로하지 말자. 다만 스스로의 일 년에서 몇 개의 단어.. 2019. 9. 26.
사십이 되기 전 부끄러운 고백 _ 오월 축제의 군중 속에서 함께 동화되지 못하고 스스로가 외딴섬처럼 느껴질 때. 아이들이 태어나고 학부모가 되기 시작하던 때. 다들 뭘 먹고사나 싶은, 막막함이 가끔 가슴 한 구석을 턱 막을 때. 면접시험 때문일까, 몸이 먼저 반응하는 단점도 장점으로 포장하기 스킬이 몸에 베여 온전한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나기 두려울 때. 나는 어떤 남편일까, 정답이 있지만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나를 자주 발견할 때.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가끔 상처받을 때. 정말 드물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있지만 큰일 난 줄 알까 봐 전화하지 못할 때. “거봐”라는 지레짐작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울 때. 돌아가긴 너무 멀고, 달려가긴 불안할 때.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른답게 행동해야 할 때. 내가 제.. 2019. 9. 26.
무심했던 지난 날의 반성 산다는 건 때론 너무 평범해서 끝없이 하찮다가도, 지난한 세월을 무던히 견뎠던 하루의 위대함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번번히 투덜거리며 지났던 그 길 위로 안간힘을 쓰며 솟아 오른 풀꽃 무리를 우연히 보았을 때, 그 죄책감과 미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5월 20일 쓰였습니다 2019. 9. 26.
여행, 새로운 발견 예행 연습이 없는 인간의 삶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기회 _ 에메랄드 빛 바다 위에 펼친 지평선이 보인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내리쬐는 태양, 그 아래서 잠시 눈을 감는다. 나는 어느새 선분홍 빛 아가미 안으로 들어와 있다. 탯줄을 끊어내기 전의 안락한 엄마 품과 행복의 감정을 기억해낸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여행이란 단어는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과 설렘을 만들어내는 묘함이 있다. 반복과 지속, 누적만 피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걱정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실수,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무엇으로 쌓이지 않고, 우연히 살짝 스친 송곳이 단지 우연일 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덜 해진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끊임없이 공허한 구멍을 메우는 반복의 지속이다. 애초에 인간의 삶에서 말.. 2019. 9. 26.
오랜만에, 폭설 머무르는 것과 움직이는 것 참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부는 맞바람도 그리 불쾌하지 않다. 밤새 내린 눈으로 소나무 가지마다 쌓였던 눈 뭉치가 바람에 밀려 툭툭 떨어진다. 소복이 덮여 숨 쉬고 있을 봄 새싹 생각도 난다. 석양으로 착각할 만큼 낭만적이 었던 빛은, 늘 그때쯤이면 얼어붙은 한강 표면을 튕겨져 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하얀 눈이 그 자릴 대신한다. 폭설이 내린 서울은 그 경계가 더 뚜렷해 세상을 완전히 양분해버렸다. 달리는 전철과 흐르는 물,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사람들. 문득 움직이는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차가운 눈에 눌려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건 움직이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오늘, 생각지 않은 폭설이 그대 마음에.. 2019. 9. 26.
머리 깎던 저녁 차가움과 따뜻함 잠바를 움켜쥐고 깃을 세운다.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먼저 들어와 내 빈자릴 차지한다. 서글프다. 어제 비가 내린 건지 낙엽들이 축축이 젖어 바닥에 얼어붙었다. 인도 옆 꽃이 피던 공간엔 얼마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았다. 추위가 온몸을 덮었지만 아직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창문 밖에서 머리를 자르며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명이 온통 형광등이어서 그런지 “다음에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보 같단 생각을 했다. 문에 달린 손잡이는 살에 붙여버릴 듯 차가워 들어갈지 말지 얼른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너 번 문이 왔다갔다한 후 완전히 멈췄을 때 정말 조용하고 따뜻한 공기가 그동안의 여러 생각들을 지운다. 잘리는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몰랐을 가위질 소리와 바리깡 기계음, TV의 .. 2019. 9. 26.
히말라야의 그 밤하늘도 이랬다. 별 하나에 집중하면 내가 빨려 들어갔고, 모두를 보면 별은 쏟아져 내렸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아파트 천장에 막힌 밤하늘을 상상하며 이 사진을 뚫어 저라 바라본다. 그랬었지, 싸한 찬바람이 콧속을 돌아들고 줄에 걸린 버팔로 고기는 아직도 달콤하다. 낮인지 밤인지 깨질듯한 별빛은 여기 히말라야에만 있는 것 같았고 안나푸르나는 새하얀 모습이 마치 빛 없이 존재하는 색이 마침내 있음을 완벽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 날, 히말라야의 그 밤하늘도 이랬다. 2019. 9. 26.
사람, 삶 퇴근길을 차분하면서 늘 소란스럽다. 어떤 일이 시작되기 전의 소란스러움과 흡사한 것이 하루가 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몇 번 했었다. 왁자지껄 이 소란스러운 곳을 지나며 분주한 움직임에서 우리가 마치 본질인 양 추구하는 얄팍한 목적의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각자의 하루를 사는 바쁜 사람들의 생활과 분, 초 속에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더 올바른가? 아니 어떤 삶이 우리를 – 나를 포함한 – 올바르게 만드는가? 그리고 서로의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가? 이 살아있는 오늘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얼까? 퇴근길. 하루를 마감하는 슈퍼마켓 복도를 지나면서 삶의 펄떡임을 느낀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2019.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