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33 사람, 삶 퇴근길을 차분하면서 늘 소란스럽다. 어떤 일이 시작되기 전의 소란스러움과 흡사한 것이 하루가 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몇 번 했었다. 왁자지껄 이 소란스러운 곳을 지나며 분주한 움직임에서 우리가 마치 본질인 양 추구하는 얄팍한 목적의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각자의 하루를 사는 바쁜 사람들의 생활과 분, 초 속에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더 올바른가? 아니 어떤 삶이 우리를 – 나를 포함한 – 올바르게 만드는가? 그리고 서로의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가? 이 살아있는 오늘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얼까? 퇴근길. 하루를 마감하는 슈퍼마켓 복도를 지나면서 삶의 펄떡임을 느낀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2019. 9. 26.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우연히 새벽 출근길 버스에서 이 노랠 들었다. 마침 창 밖으론 지난여름 뜨겁고 북적북적했던 주말 농장 터가 보였다. 작년 말 새로운 토지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말 농장은 일 년만에 폐쇄되었다. 덕분에 비료를 뿌리고 땅을 두 번은 더 갈아엎으며 정성을 쏟았던, 나름 기름졌던 서너 평 정도의 우리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잡초가 무릎 높이로 무성히 자라 올랐다. 어슴푸레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수확철이던 가을의 그곳은 얼마나 북적이며 활기가 돌았는지 모른다. 농장 전체가 대충 수 백 평은 되었으니 말이다. 연신 씨와 모종을 심고 물을 길어 날랐다. 몇 개 열리지 않았던 딸기와 좀 더 심을 걸 했던 방울토마토, 파도 파도 끝없이 나왔던 고구마가 있었다. 사람들은.. 2019. 9. 25. 중국으로 떠나는 여행자/직장인을 위한 필수 팁 이 정도는 알고 가자. 들어가며 이 글은 실제 처음 중국에 잠시 지내게 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글로 엮은 것입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에 계셨거나, 중국을 더 잘 알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여기 있는 정보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님을, 더 좋은 해결책도 많다는 것을 미리 알립니다. 일부 정보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현지에서 느린 인터넷으로 검색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최대한 배제하고 텍스트로만 의도적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알면 도움되는 정보 인터넷 한국에서 데이터 로밍을 하면 하루 11,000원(VAT 포함)입니다. 1~2주, 혹은 한 달간 머물러야 한다면 큰돈 깨집니다. 하루 이틀은 모르겠지만 3일 이상 머물러야 한다면 China Uni.. 2019. 9. 25. 아이들과 가볼 만한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수도권 근교에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어떨까? 이곳은 1960~70년대 달동네를 테마로 인천 동구청에서 지난 2005년 10월 25일 건립한 박물관이다. 입장료도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으로 무척 저렴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크게 달동네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제 1, 2 전시실과 어린이들을 위해 뻥튀기 체험, 연탄 나르기, 수레 목마, 제기차기 등을 해볼 수 있는 달동네 놀이 체험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실 세심하게 꾸며진 세트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와도 무척 좋아하시겠다는 생.. 2019. 9. 25. 엄마가 딸에게 양희은의 목소리로 듣는 내 마음속 이야기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 가사 중에서 – 도대체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매섭게 밀어내고 소리를 지르던 사춘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잊혀질 무렵 이 노래를 들었다. 응어리로 담아 둔 십 대의 ‘나’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를 삼자대면하듯 쏟아낸 가사에서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엄마도, 그 시절의 나도, 서로 같은 말을 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던 시절들이 이제야 사실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 2019. 9. 25.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이진아의 노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1987년 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유재하는 이 1집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25살의 나이로 교통사고를 당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노래는 그 특유의 음색으로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진아는 피아노와 떨리는 숨소리로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제야 곡이 완성됐다. “만나지 못할 걸 서로는 알았을까?” 벌써 일주일째..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엔 이 마음을 풀어놓아야 좀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이진아의 이번 편곡은 유재하의 그것을 다시 부른 것이 아니며 선배 가수에게 들려주는 후배 가수의 답가가 아니다. 30년 전 그가 지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상념, 그리고 젊은 청춘의 고민을 덤덤히 털어놓았던 그에게, 이미 너무.. 2019. 9. 25. 나의 시선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역지사지. 치켜뜬 헤드라이트에 길을 걷다 눈이 너무 부셨다. 누가 주인일까? 에잇… 그러다 갑자기 난 어땠나 싶다. 난 내 차의 헤드라이트를 본 적이 있던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시선은 어땠나? 내가 얼마나 치켜뜨고 있는지 나는 몰랐지. 부끄럼 가득한 퇴근길 2019. 9. 25. 반복되는 것의 소중함 지겹고 어서 빠져나오고 싶은 것이 일상이지만, 사실 그런 일탈은 일상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마치 영원의 회기를 증명해주려는 듯 오늘도 버스는 오고, 평범한 일상이 사실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마워, 그리고 감사해 2019. 9. 25. 스마트폰과 신호등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기다리는 사람들 요즘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흔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차동차용 신호등을 보거나 노점의 모습을 보거나 우리의 모습을 두리번거렸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횡단보도 앞의 우리는 무리 지어 있지만 완벽히 홀로 떨어져 나온 섬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트리거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길은 잘 건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도 옆사람들이 움직일 때 나도 같이 움직이면 되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초록 신호가 보였다. 이 시스템이 가끔 오동작하는 건 무리를 이루는 수가 적을 때다. 이때, 어떤 이들은 초록 신호가 다 끝나도록 거기 그대로 있었고 가끔 옆사람의 움직임을.. 2019. 9. 25. 버스, 기사 아저씨 요즘 버스를 타다 보면 으레 나오는 트로트 대신 귀에 익은 음악이 나올 때가 많았다. 타이밍 좋게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이겠거나 했는데 그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그 영문이 뭔지 궁금증이 생겼다. “요즘 라디오에서 복고 열풍이라도 부는 것인가..?” 주로 내가 타는 구간의 길이는 대여섯 정거장 정도인데 대부분 목소리는 없고 노래만 나왔다. 가만히 룸미러에 비친 버스기사 아저씨의 얼굴을 보았다. “참 앳되었다.” 어느새 버스기사 아저씨마저 이렇게 되었구나. 슈퍼 아저씨도, 출퇴근 직장인도 모두 모두 내 친구들이었구나. 군인 아저씨가 그랬다. 아저씨였다가, 형이었다가, 친구였다가, 동생이었다가, 아이들이 되었다. 제대를 하고 예비군이 되고 민방위가 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 본 지 오래였는데, 버스를 타면서 다시.. 2019. 9. 25. JTBC 뉴스룸을 보고 올바른 언론의 역할과 가치 9시 뉴스와 신문 몇 가지만이 세상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때가 있었다. 매일 저녁 9시면 아버지는 TV 앞에 앉으셨고 하루를 1시간으로 압축한 브리핑을 받으셨는데 조금 더 크면서 방송국은 하나가 아니고 또 각각의 뉴스도 성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코 흘리게 친구 간에 싸운 것을 같은 반 아이가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보자. 싸움을 했다는 변치 않는 ‘사실’이 있지만 한 명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진실’에 접근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엔 싸움을 한 당사자들도 있고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아이들도 있으며, 그 옆을 지나는 – 밀란 쿤데라가 얘기했던 키치(Kitsch)를 만들어 내는 – 아이들도 있었다. 언론의 올바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 욕심 이어선 안.. 2019. 9. 25. 가을이 오면 이제 제법 공기가 차다. 코 끝이 싸하게 아린 것이 확실히 여름은 갔다. 잔디밭에 빛이 따뜻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 가을이 있었다. 가을의 퇴근길은 더하다. 노을이 덮은 가을의 거리는 이런 모양이다. 광장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얘들을 무심히 보면서 “나는 언제 이렇게 컸지..” 생각했다. 내 유년시절이 생각보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모습이 낯설어 내 몸에서 영혼을 때어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1년 전 가을엔 나는 이철수 판화가의 이 그림을 너무 좋아했었고, 2년 전 가을엔 첫걸음마를 땐 아들과 동물원에 갔었다. 그렇게 올해도 고마운 가을이 왔다. 2019. 9. 25. UX를 활용하여 행동변화 끌어내기 일상 디자인과 내가 좋아하는 일 감기에 걸렸다. 이럴 땐 컵이고 수건이고 따로 쓰는 것이 좋기 때문에 “저 수건은 내가 쓴 것이니 쓰지 말고 새 것으로 써”라고 얘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새 수건을 아래처럼 걸어두었다. 누군가 막 세수를 하거나 손을 닦았다면, 그리고 뒤를 돌아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수건을 선택할 확률이 높을 것인가? (여기서 4.9195%의 정규분포 곡선 귀퉁이에 위치한 그들은 잠시 접어두자.) ‘유심히 기억해야 지킬 수 있는 것’에 기대지 않고 무의식 중에 자신의 사용자 경험에 따라 적합한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일상 디자인’이다. (UX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상 디자인’이란 말이 내 의도를 더 정확히 표현한다고 생각.. 2019. 9. 25. 역지사지 뙤약볕에 멀쩡한 남자가 갑자기 땅을 만진다. 알고 보니 목줄을 맨 강아지 발이 뜨거울까 봐 그런 거였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중요한 건 애정이 있어야 이런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아직도, 땅을 만져보는 손이 아련하다. 2019. 9. 25. 내가 좋아했던 정원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샛길로 빠지면 우악스럽게 구겨진 듯한 아스팔트 길이 하나 나온다. 이런데 도대체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게 되는데, 색도 칠해지지 않은 방지턱 때문에 서너 번 급 브레이크를 밟고 나면 그 길을 따라온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보라색 집이 하나 보인다. 이 보라색 집 앞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내가 이 정원이 특별하다고 믿게 하는 광경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머리 위로 KTX가 다니는 철도가 있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대단히 압도적이다. 그 거대함 앞에 잠시 자연과 인간, 숙연함, 위대함, 잿빛, 파괴, 재앙처럼 잘 서로가 어울리지 못하는 단어들이 내 감정이 되기 위해 애쓴다. 구도 때문이었을까? 다리를 다 건너서 본 그 콘크리트 구조물은 .. 2019. 9. 25.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