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기를 알게 된 건 정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올바르게 김밥을 만드는 집이 있는데 참 괜찮았다는 글 때문이었다. 언제 한 번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마침 동네에 생겨서 오늘로 2번째 방문을 했다. 처음엔 김밥을 사 먹었고 오늘은 철판제육덮밥을 시켰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휘발시키지 않고 싶어서 글을 써두기로 했다.
지난번엔 포장을, 오늘은 아이를 내려주고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주문한 덮밥이 나오자 온전히 이 곳에서 만드는 밥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얼른 집어넣었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기업의 철학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습관들 - 요컨대 식당에서 여럿이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 - 의 대다수는 이런 철학의 부재에서 오는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손가락을 접으며 -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 애써 기억했던 단어들을 다시 하나씩 풀어본다.
회사의 신념과 철학
손님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아르바이트생과 보낸다. 굳이 어떤 말을 걸지 않더라도 말이다. 탁자 사이로 지나는 걸음, 컵을 넣고 물을 주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시선, 다 먹고 떠난 자리를 다루는 행동, 가끔 찾아오는 쉼의 시간에 볼 수 있는 눈빛. 사실 여기서 그 회사의 철학과 신념이 얼마나 진짜인가가 제대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어느 회사가 스스로 우리는 적당히 하고 많은 돈을 추구합니다.”라고 말하던가. 이미 포춘지의 그 수많은 우수 사례들이 어떤 기업 경영인들의 스펙 쌓기와 잘 꾸며진 이력서 같다는 생각을 했던 건 비단 나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유심히 들어보니 누가 주인인지 확실하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불친절하거나 무례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머진 다 그냥 이 가게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란 느낌이었다.
경험과 관계
포장 주문도 상당했고 테이블에 기다리는 사람도 꽤 많았는데 공기는 죽은 생선 같았다. 여기온 사람들은 여타 흔하디 흔한 김밥집을 찾아 배를 채우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올바름’에 감동해 지속적 방문을 하는 사람들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청정지역 김을 정갈하게 잘라 바른 참기름 조금과 맛보도록 하는 즐거움으로 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에는 저염 햄을 조금 맛보게 줘볼까? 4,500원씩이나 하는 김밥을 덜컥 사보기 두려울 텐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씩 입에 넣어주면 어떨까?
영국에서의 크리스피 크림(Krispy Kreme)은 이제 머리가 좀 굵었다고 생각하는 내게도 늘 설렘이었다. (한국에서는 좌판 떨이판매로 브랜드와 경험을 망치고 있지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참 활기차고 친절했지만 어떤 손님을 알아보는 등 계산 이외의 추가적인 교감이 없어 관계가 결재 후 번번이 종료되는 것이 아쉬웠다.
잠시 얼굴인식 시스템이 POS에 장착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중요한 건 알아보는 것 그 자체가 아니었다. ‘알아본다’는 것은 데이터를 DB 화해서 “저 손님은 어떤 메뉴 위주로 구매를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 만약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 가게가 있다면 나는 다신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 ‘관심’을 가지고 이 가게는 나와 좀 특별한 관계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학창 시절 학교 앞의 단골 주점을 떠올려보자. 거기는 주인과 손님의 경계가 없었고 가게와 잔디밭이, 낮과 밤이 나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술집에 우산을 사러 들어가기도 했다.
재료만 ‘바른’가?
가게에 들어가기 전 도로와 인접한 가게의 통유리를 통해 김밥을 마는 분주한 손길들이 보였다. 4~5명의 직원들이 김밥을 말고 있었는데 첫인상은 깨끗해 보이고 투명하단 느낌이었지만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 다시 들여다본 그곳은 참 힘들어 보였다. 다들 일렬로 서서 바쁘게 김밥을 말고 계셨고 한 사람이 서있을만한 공간뿐이어서 허리 한 번 돌리기도 쉽지 않았다. 흡사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재료만 바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바르다 김선생>이 가진 김밥과 재료에 대한 철학을 직원들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거나 씹던 껌처럼 여길 때, 그리고 그들을 김밥 조립공으로 여길 때 <바르다 김선생>은 그냥 김밥집이 된다.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 비롯되긴 하지만 ‘좋은 과정’은 다른 차원의 ‘올바름’이다.
라인 확장의 법칙
<바르다 김선생>은 김밥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지금 덮밥/면/만두류도 판매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의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런 확장이 기존 김밥이 가진 브랜드 이미지를 희석시키거나 악영향을 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첫 방문 때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덮밥을 먹어봤다. 맛이나 방금 만든 ‘기분 좋음’ 같은 것은 있었으나 ‘김밥류’와 다르게 기름이 많고 자극적인 맛을 가지고 있어 나의 경우엔 처음에 가졌던 <바르다 김선생>의 이미지가 일부 깨졌다.
인식 독점과 기대되는 경쟁
다행히 <바르다 김선생>은 다른 김밥 브랜드들과 다르게 ‘좋은 재료’에 대한 타협 없는 원칙을 제시하고 그것으로 성장하고 있어 ‘올바른’이라는 단어의 소유권 확보와 정직한 식품제조/유통영역에서 꽤 괜찮은 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바른 먹거리 풀무원’ ‘맛있는 자연주의 프레시안’과 앞으로 하게 될 멋진 경쟁이 기대된다.
브랜딩
<바르다 김선생>의 포장 패키지와 폰트는 그들이 추구하는 원칙과 신뢰를 한눈에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홈페이지 역시 아직 JPG 한 장 노출하고 있지만 딱 봐도 <바르다 김선생>의 페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그렇지 못해 좀 아쉬웠는데 요즘 흔하게 보이는 세련된 카페 느낌이어서 일관성 있고 통합된 브랜딩을 했으면 좋겠다.
요즘 이런 철학을 가지고 생겨나는 회사(가게)가 많아져서 참 기쁘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도 단순히 비싸다는 개념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애정을 주며 구매와 재방문으로 응원을 하니 사장님들도 더 힘이 날 것 같다.
참 많은 글에서 ‘회사는 어때야 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 개개인의 자존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정직원, 계약직, 파견,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지닌 현실을 감안하면 우린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먼저 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그 회사의 철학과 신념은, 이제는 장식처럼 붙어있는 비전과 미션 포스터와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 채용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렇게 어렵사리 팀을 꾸렸더라도 오래가긴 쉽지 않은 것 같다. 회사는 번창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조직도 세분화된다. 지리적으로 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모두가 ‘일’을 하느라 바빠지면 ‘사고 치치 않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맥도널드 같은 표준 매뉴얼로 약점을 보강하여 스스로를 하향 평준화하는 케이스는 이제 흔하다.
또, ‘혁신 기업의 딜레마’는 여기에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이 ‘좋은 재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 창업 당시의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매력은 없어진 지 오래 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이 된다’는 건 그 매력들이 일상에 녹아들었다는 긍정적 신호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경쟁업체들도 그렇게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측면에선 위기의 신호이기도 하다. 모두가 ‘좋은 재료’를 쓰고 있다면 <바르다 김선생> 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할까? 그때 매출 그래프의 변화량은 0에 수렴하진 않을까?
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홈페이지 있는 이 생각들을 실천하기 위해 <바르다 김선생>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2014년 7월, <바르다 김선생>에서 ‘철판제육덮밥’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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