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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실리콘밸리에서 온 한국인

by 마켓펀치 2019.09.25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열렸던 ‘실리콘밸리에서 온 한국인’ 콘퍼런스 참관 후기를 적어본다. 당시의 내용을 공유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고 얻었는지 정리하기 위함이 더 크다.

 

진행시간표


나는 왜 여기에 왔나?

해외 유명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었고 지금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에서 했던 일, 그리고 MBA를 다녔는지, 그럼 당시 결혼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그 어마어마한 학비를 지불하고 다닐 결심은 어떻게 했는지? 이게 어찌 보면 “군대를 다녀오는 게 좋은 것인지?” 같이 약간은 어리석은 질문이란 건 잘 알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나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행동을 할 수 있는까?”에 대해 좀 정리해보고 싶었다.

 


키워드

콘퍼런스 참석하기 전에 내가 관심 있는 키워드를 몇 개 골라갔다. 시간표에 따라 그냥 흘려보내긴 싫었기 때문이다.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입퇴사 / 기업문화 / (구체적으로)하는 일 / 연봉 / 발표자의 꿈 / 스타트업 / 창업 / MBA / 마케팅 / 경영 / 프레젠테이션 / 외국에서 일하기 / 실리콘밸리


그리고, 이야기

일부 곡해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메모했던 내용을 써본다. 해외 MBA 이후 원래 계획엔 없었지만 현지에서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는 케이스가 꽤 많은 것 같았다. 인상 깊지 않았던 세션은 메모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IT컨설턴트 윤종영 님

한국사람들을 보면 부끄러움을 타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부끄러운 질문은 없고 질문을 통해 서로가 더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질문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절반만 동의하는 편인데 당시 콘퍼런스 발언에서는 질문에 대해 너무 공격적으로 청중을 대했다. 30-40년 몸에 밴 교육을 어떻게 이 콘퍼런스에서 단숨에 때어낼 수 있단 말인가? 또 빠른 속도의 행사 진행과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이 아닌 것도 적극적으로 질문하려는 노력에 방해가 되었다. 행사 구성이 진행방향과 잘 매칭 돼야 하는 이유인데 질문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고 본다. 많은 질문이 쏟아졌으면 준비된 세션을 모두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행사 진행자는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시간 관계상..” 이런 거? 큰 콘퍼런스룸 역시 그런 요소 중 하나였는데 마이크를 가진 진행요원이 멀리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편치 않았다.

Stealth 창업자인 배정융님

곧바로 VC를 상대로 발표를 하고 소개를 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굉장히 높다고 한다. 다른 만남의 기회(파티나 골프, 콘퍼런스 등등)를 통해 레퍼런스를 얻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또 창업해본 경험이 있는지도 중요한데 처음 창업을 한 경험은 vc로부터 거의 투자받기 힘들다. 고객이 굉장히 중요하고 폭발적 요소(Upside model)가 뭔지도 중요하다.                                                          

Stealth 창업자인 배정융님은 현대정보기술에서 근무하시다가 MBA를 하셨는데 나의 상황/생각과 비슷하여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MBA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실들 학비, 가정, 직장을 확인하면서 제자리에 멈췄던, 얼마 되지 않은 그때의 기억들이 금세 떠올랐다.

전 넷플릭스 엔지니어인 Eric Kim님

‘짜증에서 영감을 얻다’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한 10불이라도 지불하는 고객을 만들고 잡아라. 이 분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는 ‘직원의 몸값을 올려주는 (커리어 패스를 발전시켜주는) 회사’, ‘아이가 그린 그림에 아빠가 있는 회사’라고 한다.

스타트업은 그냥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네트워킹도 하고 VC도 만나야 두어야 하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
– 쇼생크 탈출 대사 중

GPOP 이동일 님

강남스타일을 보고 파란색 턱시도를 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건 단순히 노력한다고 드는 생각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다가올 미래기술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디자이너가 팀을 꾸리는 창업 스토리/어려움에 큰 공감이 되었다.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실체화를 쉽게 하기 힘들고 실제 제품이 없다는 건 정말 큰 걸림돌이다. 큰 시야를 가지고 지금 있는 조직의 다른 프로젝트들도 관심을 가지자. 조직의 큰 에코시스템을 그려보고 배우자.

 

 

Why -> What 에 대해 설명하는 Simon sinek의 TED 강연영상도 참고하자.

nWAY의 진정희 님

실리콘밸리에서도 여성 비율이 적은 편이지만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남성은 대부분 엔지니어나 테크 백그라운드를 가진 경영 쪽인데 반해 여성은 다양한 산업군의 포지션에서 일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임정욱 센터장님

실리콘밸리는 높은 물가와 극심한 경쟁. 빈부격차.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거만함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기술보다 비즈니스 아이디어 위주의 창업에 다들 경험이 일천한 첫 창업 위주가 많아 아쉽다고.

유호연 트위터 엔지니어님

트위터 입사 시 링크드인을 통해서 연락을 받으셨다고 한다. (해외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링크드인(Linked In)’을 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트위터에서는 자연어 처리 업무를 하고 계셨고 프레지 발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늘 배워보곤 싶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었는데 이 발표를 보고 프레지에 손을 대보고 있다.

트위터가 쓰는 툴들. JIRA, Intellij, Java, Scala(빅데이터에 유용한 언어), Git, Review Board, Hudson

서준용 징가 엔지니어님

개발자 같지 않은 말솜씨와 핵심을 솔직하게 찌르는 답변들이 너무 고마웠다. 월급은 100%을 받으면 35% 택스, 27% 집세. 나머지… 의 비율로 사용하고 계시다고. 자기 회사가 어떤 인더스트리에 속해있는지 주요 매출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아보길 권했다.

트레킹-> 데이터 분석 > 제안/구현 > 테스트 > 일부 적용 > 전체 적용 : 이 과정을 매우 빠르게 적용하는 것이 징가의 경쟁력.

징가는 개발 툴에 있어 꽤 자유로운 편이라고. DB Visualizer, Charles Web Debuging. VPN(RSA), CISCO JABBER, SKYPE, JIRA, GITHUB

매일 아침 Daily Stand-up Scrum을 한다고 함. 내가 어제 뭐했고 오늘은 뭐할 건데 이게 고민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시니어들이 이런 문제를 함께 푸는 시간을 가지고 ALL-HAND 전사 미팅이 있어서 경영진에서 비전과 고민을 직원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돌직구식 질의응답을 함.

허린(인텔 하드웨어 엔지니어)

인텔은 틱-톡 모델로 공정 변화와 설계 변화를 반복해서 개선하는 과정을 사용하고 있음. 인텔에서는 자신이 기어할 수 없는 미팅에는 참석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다. 행동중심적 실용적. 

인텔에서는 포지션이 아닌 액션이 리더십.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확하게 짚어줌. 나의 성과는 직접 발제. 공식적 팔로업. 재주넘는 넘과 돈 챙기는 넘이 다르지 않도록 한다고 함.

김동욱(네이버 플랫폼 본부장)

급격한 성장, 살트임 -> 다음엔 튼살크림을 바를 수 있다는 걸 앎. 각각의 사람들이 회사에서 추구하고 원하는 목표가 다르다. 이걸 알고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는 거 중요하다. admin도입, 결재/기안 단순화, flextime출퇴근, pco/pm제도, 지정 미팅룸

인재상 부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어서 몇 개 써본다.

  • 인간관계 외에 엄청 까다로운 사람
  • 문제가 있으면 썩기 전에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 (먼저 얼굴 붉힐 말을 하는 사람)
  • 안 하기로 결정되면 빠르게 드랍하는 사람
  • 지시가 아닌 설득/토론/경청하는 사람
  • 스스럼없이 질문/의견을 말하는 사람
  • 듣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있는 건 죄악.

패널토론

외국 회사는 2개의 트랙으로 매니저/기술자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놀라운 복지 제공은 그만큼 채용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용 불안정성(회사도 직원도 즉시 그만두거나 해고할 수 있는)을 가진 환경으로 인해 기업이 무한대의 지원을 하면서도 무임승차를 막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환경(사용의 관계를 쉽게 상호 해지할 수 없는)은 유사한 직원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선 기업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이 굉장해 보였다. 우리에게 꼭 맞는 복지모델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 역시 GWP를 만드는 한 축이 될 테니..

페이스북은 파티션이 없고 오픈되어있음. 여기는 프로세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함. 바로바로 하는 문화. 절차가 아니고 결과. 5억짜리 PO를 바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문제가 아니다. 벤더보다 네가 더 잘 알아야 한다.

트위터에는 9가지 비전이 있음. 그중 하나 Grow our business in a way that makes up proud

징가의 코어 벨류 실력주의(Meritocracy) 애완동물 프랜들리 한 회사라서 데리고 와서 일해도 됨.

넷플릭스는 자유와 책임, 그리고 혁신. 인터뷰를 11번을 봤다고 함. 찾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딱 나타날 때까지 채용하지 않음.

실리콘밸리 가는 법

1. 석사를 외국에서 하고 남은 기간 동안 영주권 신청
2. 일을 구함 > 한국지사에서 미국 본사로 넘어가는 법
3. 한국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미국에서 학회, 잡 펀딩, 진행

패널 분들이 생각하는 핫 트렌드

1. 스크립트에 능숙한 사이트 관리자
2. Internet of things
3.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술
4. 웨어러블, 건강
5. 서버사이드 로그분석
6.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모든 플로우를 잘 아는 사람.

 


컨퍼런스실을 나서며

막연히 궁금했던 것들

실리콘밸리의 핫한 테크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스타트업 CEO 분들은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시작하시는 걸까? 모아둔 돈이 많으신 걸까? 뭐 이런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생각들을 좀 정돈해 보고 싶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SNS가 있어 좀 낫지만 언제 또 이런 분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뵙고 정성스레 준비한 PT를 들을 수 있을까. 마치 여러 번의 전화 인터뷰를 거치고 첫 대면을 할 때의 그런 설렘과 기분이었다.

아쉬웠던 점

스타트업 세션에서는 각 회사마다 시작부터 끝까지 준비하고 겪었던 일들을 큰 흐름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재무상태를 가지고 있고, 어떤 비전이 있는지(무엇이 차별화되는 핵심 요소인지), 생각대로 돈은 잘 벌리고 있는지(이건 스타트업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으므로), 실리콘밸리라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환경에서 현재 어떻게 끌어가고 있으며 무엇이 고민인지 이런 내용들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말해지지 않고 발표라는 것으로 한 꺼풀 덮여있는 느낌이어서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LINE의 글로벌 시장 진출 이야기는 굉장히 기대가 컸는데 주제와 초점이 완전히 빗나가지 않았나 싶다. 같은 팀 사람이 봤으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재밌었겠다는 생각은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문화 세션은 잘 듣기 힘든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고용안전성이 떨어지는 만큼 입퇴사 같은 일들이 빈번할 것 같은데 그것과 관련된 보안(시스템 패스워드 관리, VPN, USB 차단, 인쇄물 관리, 소스코드 유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고,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인프라 구성은 어떤 식으로 시작하는지(클라우드 기반이나 IDC, 아니면 그냥 사무실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시작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 엔지니어의 시각과 함께 매니저의 시각에서 보는 기업문화 내용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문화라는 주제가 좀 부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 )

나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MBA를 생각하면 늘 갈증이 난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서비스 운영/기획을 하면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정확히 이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수차례 했었다.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재미있고 흥분된다고 느끼는 것들이 하나둘씩 더 발견되기 시작했으니까. 요컨대 문화, 글쓰기, 마케팅, 경영, 광고, 개선과 실행 이런 것들이다. ‘들여다보기’를 시작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막연한 생각을 계획이라고 안주하지 않았나.’ ‘스스로 뭔가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는 마케팅본부장님이 D사의 MBA 출신 지인을 소개해 주면서부터였다. 여러 가지 조건들 – 이런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할 때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었고, 결혼한 상태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이 MBA를 가려고 할 때 2~3억 정도 드는데 그것을 지불할 여유자금이 없어 한국에서 가진 모든 것들을 처분하고 떠나는 결정을 해야 했으며,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돌아와서는 어떤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던 것,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고 설득을 해야 했던 것(이것은 MBA를 마치고 겪을 생계에 관한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등 – 이 비슷하여 내가 결정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그분 역시 MBA 전에 살던 환경과는 극과 극으로 돌아와서는 반지하 월세방에 가족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이 겪었을 어려움과 상실감이 어땠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 절실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수많은 안전장치는 사람이 가진 뇌관을 무디게 만든다.” – SAMSUNG TESCO를 떠나기로 결심하며 쓴 메모 중.

나는 과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질문이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해본다.

내가 MBA를 가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결정을 할만한 강력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MBA를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경영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그러한 환경에서 하고 싶기 때문이다.(그냥 단순 지식의 습득은 온라인 과정도 있지 않은가) 이 이유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내가 MBA를 하고 싶은 1순위 이유고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학부시절엔 컴퓨터 공학을 했었는데 직장생활 7년 동안 ‘나를 들여다보기’하면서 발견한, 새벽잠을 설칠 정도의 흥분을 주는 것들이 MBA 과정에 있었고 그걸 채우고 싶은 욕구는 나에게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 욕구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릴 용기는 없다. 하지만 가능한 방법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있다. 지금이 스티브 잡스의 이 이야기를 내 삶에 실천할 좋은 기회다.

“Keep looking, Don’t settle”
– Steve jobs

바라만 볼 것인가?

2002년 신병교육대에서 일이었다. 큰 박스 하나가 내무반으로 들어왔고 뒤집어 들어 올리자 바닥에 CS복(훈련복)이 잔뜩 쏟아졌다. “입어!” 조교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그다음이 가관이었다. 엉덩이가 그대로 다 보이는 옷, 허리가 너무 커 두 명은 족히 들어가는 옷, 단추가 없는 옷, 너무 작아 허벅지도 안 들어가는 옷.. 그중 몇 명은 이미 자기한테 맞는 적당한 옷을 찾아 입고 서 있었다. 나머지 신병들의 마음은 더 급해졌고 빠르게 입고 벗기를 수차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 없다는 걸 깨달은 신병들은 들어가기만 하면 일단 입고 침상 끝에 차렷 자세로 서기 시작했다. 아직 옷을 고르지 못한 몇 명은 팬티만 입고 대열에 합류했다.

당장 꼭 맞는 옷이 없다고 팬티만 입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별을 이루는 점 하나를 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콘퍼런스를 들으면서 경영에 대한 키워드 부분에선 이런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경영하기 vs 창업해서 경영하기’. ‘회사 안에서 스타트업을 해보면 어떨까?’. 물론 그 수준과 절실함의 차이가 클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도 어찌 보면 스타트업의 축소판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자신이 ‘팬티만 입고 서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건 단순히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원론적인 얘기와는 좀 거리가 있다.) 그 시작이 어렵다면 징가의 서준용 엔지니어님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회사가 어느 인더스트리에 속해 있고, 주요 매출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동시에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갈망할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벽을 뚫고 돌아가며 실행 가능한 계획들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SKT의 멀티캐리어 광고

두 개의 추진체가 있다. 한쪽은 지금 환경에서 이룰 수 있는 것. 다른 한쪽은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실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둘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

 

이 글은 2014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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