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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아쉬운 리디북스의 서비스 방향성

by rhodia 2023. 2. 22.

리디북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전자책 서비스다. 전자책 구매 할 일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 리디북스에서 구매한다. 리디북스의 전자책 단말기 리디페이퍼, 리디페이퍼 프로 모두 사용해 봤고, 프로는 아직 가지고 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 리디셀렉트도 밀리의 서재로 전환하기 전까지 몇 년을 사용했었다. 

 

왜 예전보다 리디북스에 덜 애착이 갈까 생각을 해보았고 두서없이 드는 생각을 가볍게 메모해본다.

 

1. 리디는 무엇을 파나요?

리디북스는 전자책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콘텐츠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전자책에 갇혀있다. 요즘은 데이터가 돈을 만든다. 리디북스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선택해서 얼마나 집중도 있게 읽었는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어떤 메모를 하는지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이런 데이터가 그냥 흘러 없어지는 느낌이다.

 

작년 종료된 아티클 서비스는 좋은 시도였지만 아쉽게도 효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요즘은 콘텐츠가 넘치기 때문에 어떤 글을 읽을 때, 특히 3분 이상 걸리는 경우 클릭까지 이어지는 허들을 어떻게 넘도록 도울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장치와 경험을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오죽하면 OTT가 오리지널 시리즈물의 스토리 압축 영상을 유튜버를 통해 공식적으로 유통할까. 일단 찍먹 해보고 마음에 들면 자세 잡고 진입하는 것이 요즘의 콘텐츠 선택 방법이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지났다. 개인화 추천 모델이 답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자에게 잘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추천 시스템을 갖췄어도 이해되지 않고 설득되지 않으면 선순환의 고리 안으로 사용자 끌어들일 수 없다.

 

리디북스를 들어갔을 때 보여지는 메인 페이지는 매력이 없다. 실시간 랭킹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이 많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Carousel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옆에 있는 사람과 내가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콘텐츠를 만날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개인화된 콘텐츠로 사용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매일 들어오고 싶도록.

 

사람들의 개인화 데이터에 리디가 더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Pocket이란 콘텐츠 북마크 스크랩 서비스는 프리미엄 이용료가 $4.99/월이다. 나는 리디가 Pocket보다 한국어 콘텐츠에서 훨씬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디가 스타트업일 때 선릉역 던킨도너츠 옆자리에서 컨텐츠 미팅하던 모습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 넘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만, 처음처럼 미션이 있던 스타트업의 모습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 그냥 출근하고 일하는 그런 곳이 되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았던, 그래서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며 생활필수품이라고 꽁꽁 싸매고 있던 많은 물건과 기억들이 이삿날이 되면 상당 부분 정리가 된다. 일주일만 지나도 사라진 물건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리디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정체성이다. 자신들이 무엇을 파는지 정의하고 군더더기는 다 버려야 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전자책 시장 선점 기업의 유리한 위치가 희석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구조로는 과반을 유지하려면 판관비를 지출은 필연적인데 이러면 손익이 망가진다. 리디셀렉트 구비 도서를 보면 밀리의 서재와 유사 점유율로 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본다. 다른 방식의 전자책 유통 구조가 짜일지도 모른다. 이대로면 전자책만 파는 알라딘, YES24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19금, BL 마니아 취향을 위한 웹툰 기업이거나.

 

2. 독이 든 성배, 웹툰/웹소설

시간이 좀 된 것 같은데 리디북스가 웹툰, 웹소설 같은 것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론칭 후 가시적인 매출 증가가 있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는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웹툰/웹소설, 화장품 이런 것은 마진이 많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너도 나도 손을 댄다. 리디는 여기에다 다른 대기업이 손대기 꺼려하는 19금, BL물을 간판에 걸었다. 기존 전자책 사업으로 매출 성장이 쉽지 않으니 이해는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콘텐츠 기업이 되길 기대했던,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나는 실망했다.

 

아래는 리디북스 도메인을 치고 들어가면 처음 나오는 페이지다. 웹툰이 메인이다. 책을 좋아하고 기존 전자책에 진심이었던 리디북스를 기억하는 고객들은 여기서 브랜드 충성도에 상처를 받는다. 추천, 로맨스, BL.. 리디에 접속할 때마다 이런 화면을 매 번 봐야 한다. 웹툰 비즈니스를 하고 싶으면 기존 전자책과 이런 식으로 서비스를 섞으면 안 된다.

 

처음과 달리 뭘 파는 곳인지 헷갈리는 기업 정체성에, 웹툰/웹소설이 이런 식으로 들어오면서 밀리의 서재에 더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자책 구매는 리디에서, 구독은 밀리에서 한다.(리디셀렉트는 이미 경쟁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본다) 밀리가 전자책 구매까지 가능하게 되면 리디는 기존 구매 도서 읽을 때를 제외하곤 접속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리디는 나에게 그렇다.

 

웹툰을 매출을 하드캐리하는데도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업이익을 30억으로 봤을 때 8,000억은 대충 멀티플 250배인데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에서 내가 투자자라면 밸류에이션 1,000억 이상으로는 투자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너무 나도 슬픈 ridibooks.com 메인 페이지

3. 프로필 관리

대부분의 OTT서비스는 프로필 관리 기능이 있다. 사용자 별로 추천하는 콘텐츠도 다르며, 나이나 기타 조건에 따라 노출하지 말아야 하는 정보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리디 페이퍼 프로가 있고, 아이패드도 있다. 리디셀렉트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리디로 보여주는데 웹툰, 웹소설이 들어오고 나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리디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을 리디북스 앱을 써보면 도저히 이걸 아이들에게 줄 수 없다. 가족이나 아이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성인 이용자 한 명만 고려하여 기획한 것처럼 느껴진다. 

토스는 유스 카드를 통해 아이들이 자랄 때부터 토스의 서비스와 앱을 경험하게 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마치 밥 먹고 옷입 듯 자연스러운 경험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살 때면 아이들이 "로켓배송으로 와? 트럭배송으로 와?"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광고를 보지 않고도 로켓배송이 주는 사용자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리디가 니치 취향의 웹툰/웹소설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이 책을 종이로 안 볼 때는 리디북스 하는 거구나 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심어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 상태로는 19금과 BL콘텐츠로 가득 찬 리디북스 앱을 자녀에게 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리디북스 웹툰 캡처
리디북스 웹소설 캡처

 

여전히 나는 리디에서 전자책을 산다. 그리고 좋은 콘텐츠 개인화가 나오면 언제든 구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밀리의 서재도 얼른 전자책 구매 서비스가 들어왔으면 바라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알라딘도 하고 YES24도 하는 전자책 유통회사에 유니콘 밸류에이션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웹툰/웹소설을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용자를 고려한 세련된 기획으로 개인화된 콘텐츠, 전자책, 웹툰/웹소설을 잘 나누고 연결하며 전자책은 리디로 보는 거, 더 나아가 "리디를 구독 안 하고는 직업 경쟁력이 없어"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좋은 기업 문화를 가졌는지 보려면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를 보면 된다. 리디의 성장과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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