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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시지의 힘

by rhodia 2019. 10. 29.

네이버 데뷰(Deview) 2019 행사에서 규제를 허물고 AI(인공지능) 정부가 되겠다는 대통령의 비전 제시가 있던 날,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다가 검찰에 기소됐다. 어떤 사람들은 한 입으로 두 말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건 별개의 문제이며 불법 서비스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냥 서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문제들은 대게 이런 식으로 복합적 이해 상충 구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절대 선일 수 없고, 반대로 다른 쪽이 절대 악일 수 없다. 어제 있었던 검찰의 기소는 말 그대로 검찰이 타다를 불법으로 판단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기소를 진행한 것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검찰의 기소가 타다를 불법으로 만들지 않으며 그렇다고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단일화된 의사결정 라인이 없다. 북한이나 중국처럼 최고 결정권자가 어떤 의사결정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법으로 제정되거나 시행될 수 없다는 뜻이다. 국회가 논의하고 입법을 거처 시행되며 경찰이나 검찰, 시민단체 등이 위반 여부를 감시하고 법원이 판단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시민이 있다. 시민은 이런 행정 절차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선거를 통해 행정부와 국회를 구성으로 대신한다. 

 

많은 사회 문제들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재가 되어 없어지거나, 반대로 단단히 굳어 진보된 사회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열기로 가득찬 밀폐 용기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지며 표면으로 분출되기도 하고 싸늘히 식어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떤 방향을 갖기 위해선 무엇이든 움직여봐야 한다. 국가는 거대한 함선과 같아서 몇 번의 노질로 그 방향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다. 쉽사리 결정된 방향은 힘이 센 어느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필연 무엇이든 버블이 생기고 다시 꺼지며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회귀(regression) 그래프에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은 길고 지난하지만 멀리서 보면 큰 파동을 그리며 어떤 추세를 형성한다.

 

규제가 모든 새로운 시도에 반하는 것이며 혁신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든 규제를 철폐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규제는 오랬동안 우리 사회가 만들어온 일종의 규칙이기도 하다.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삶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엔 늘 정치가 있다. 규제는 대부분 해자(moat)로 작용하기 때문에 안쪽의 집단에겐 이익을, 반대쪽의 집단에겐 잠재적 기회 상실을 유발한다. 그리고 함부로 만진 규제는 이익 집단의 위치를 바꾸며 다시 갈등을 유발한다. 규제 철폐는 달리 보면 새로운 규제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시민 사회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각 개별 시민의 의사가 현실에 반영되는 것은 느리고 답답하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버블이 생기고 꺼지며 그 과정에서 시민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상, 하단 한계치에 수렴하는 구간이 생겨야 한다. 그때까지는 그 과정이 지루할 수 있다. 법원은 과거의 판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 법은 헌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좀 더 유연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런 판결의 기초가 되는 자산이 시민 사회의 한계치 수렴 구간이다. 타다에 관한 판결이 어떻게 날지 알 수 없지만 2019년의 대한민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어느 지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법이 개정되고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두 뉴스를 보면서 메시지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 지위의 사람이나 집단이 내는 메시지는 실체가 없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향후 의사결정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뜻하며 자본의 흐름과 이익의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주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의 말 한마디에 비트코인 가격이 40% 상승했다. 미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의 연설이 끝나면 세계 시장의 유동성이 춤을 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는 특히 눈여겨볼만하다. 그는 시장이 불가능하다고 예측한 메시지를 여러 차례 실행에 옮겼다. 이번엔 아니겠지 싶었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갔다. 그러자 메시지에 힘이 생겼다. 

 

메시지가 갖는 힘의 원천은 직책과 지위에 기반하지만 실행력에 의해 평가된다. "어차피 의미 없어. 별 영향도 없는 걸. 그래봤자 똑같아"와 같이, 의심받는 메시지가 지속되면 메시지는 힘을 잃는다. 메시지가 힘을 잃으면 더 과격하고 감정적인 단어가 포함되어야 대중과 시장이 반응한다. 이미 둔감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네이버 개발자 행사에서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생각해본다. 규제 해소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되며 접점을 찾아갈 것이다. 타다의 불법성은 시민 사회의 수준에 부합하게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다. 다수의 공공 이익과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결정과 힘있는 메시지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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