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모든 것이 백지에서 시작해 첫 글자를 쓰는 순간 어떤 기준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하루 10명 미만의 방문자와 50%가 넘는 이탈률을 가진 블로그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먹을 수도,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쓰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도에 더 기대도록 만든다. 언제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안정감 역시 생각보다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자기의 생각으로 내고 사람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일은 늘 두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손님을 위해 고등어를 굽거나, 국수를 삶는 일. 팔리지 않을지도 모를 상품을 쌓아두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 하루 0명의 접속자를 기록하는 서비스 제작자. 연신 틀려대는 피아노 건반을 눌러야 하는 피아니스트, 미발표 곡의 작곡가. 어떤 곡에 붙을지 모를 글을 써야 하는 작사가. 포지션을 가진 트레이더. 알파고가 있는 상황에서 수를 둬야 하는 바둑기사. 출전 여부조차 불투명한 운동선수. 하다못해 길거리 좌판의 상인도 그렇다.
돈을 번다는 건, 이익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결정을 평가받는 일이기도 하다. 생계가 달려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절실함이 늘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지표는 뚜렷한 이동평균선이 그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위로 혹은 아래로 어디까지 움직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삶의 등락은 작은 결정조차 어렵고 두렵게 만든다. 공포스럽고 확신도 가질 수 없는데 나의 무엇을 얼마나 걸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결정은 쉽다. 예 또는 아니오를 선택 하면 된다. 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렵다. 확신은 많은 것을 걸게 만들지만 큰 손실을 내포하고 있으며 적은 확신은 주저하게 만든다. 작은 배팅은 안전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어떤 확률로 좋은 결과를 냈다 하더라도 크게 벌긴 힘들다.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결정한 큰 배팅은 의외의 수익을 주기도 하지만 누적된 손익은 마이너스로 귀결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대중의 편향을 거스르기 어렵다. 확신을 주는 추세는 마음의 안정감을 주지만 레드오션일 확률이 높고, 사람이 드문 곳은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공포는 단순 감정이 아니다. 공포는 손실을 의미하고 손실은 가지고 있는 총알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줄어든 총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자산을 0으로 만들 수도 있다.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것은 생활의 불편을 넘어 생존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포라는,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단어는 현실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공포라는 단어를 종종 파산으로 바꿔 생각하기도 한다.
생각을 팔아 결과를 만들고 성과와 연동된 수익을 가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포를 가지고 있다. 확신이 없을 수도 있고 확신을 가질 대상 조차 결정하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모르겠다.
신규 상장된 주식의 차트는 당일의 등락만 있을 뿐 이동평균선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직 열흘 치 이동평균선도 그릴 수 없다면 더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꾸준히 하루를 쌓다 보면 내 결정의 등락과 추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맞고 틀린 판정도 기준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다시 생각의 꼬리가 글쓰기의 어려움이라는 머리를 문다. 글쓰기의 두려운 감정은 사실, 결정에 대한 확신 부재에서 출발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단 글쓰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며,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 누구나 느끼는 공포일 것이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제약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보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지속해 꺼내 쓸 수 있는 양식을 만들고 비축하는 것. 그리고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것.
단 몇 줄이라도 거르지 않고 써내야겠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여전히 그것은 도구이지만 목적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무엇이든 하루라도 거르지 않고 해본다음 생각해볼 일이다. 답은 검색엔진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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