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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떤 이유

by rhodia 2019. 10. 26.

삶은 늘 노이즈로 가득 차 있다. 때때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려는 노력은 이런 노이즈에 부딪치며 파열음을 낸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일까. 사람의 삶은 하루에도 수 억 가지의 군상으로 나타나며 모두 제각각이다. 분쟁은 상황과 신분에 따라 가중 처벌되었다가 작량 감경되기도 한다. 법은 그저 시대의 문제를 누적시켜 과대 적합되지 않도록 일반화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이동 평균선에서 일정 부분 거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만든다. 많은 폭력 사건에는 각자의 이유와 변명이 있다.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면 이해 못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진실은 희미해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폭력 사건에서 변하지 않는 원칙은 자기 결정권이다. 수단으로써의 인간이 아닌 목적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것. 원칙이 있으면 소음으로 가득차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굳건히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불길에 휩싸일 땐 곧 죽을 것만 같아도 조금만 말을 바꾸면 정 반대의 감정을 느낀다. 처지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원칙은 이런 소음을 관통한다. 처음부터 완결인 원칙은 없다. 그것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사소한 판단의 누적 합이다. 원칙을 고정하고 상황을 판단하면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 삶을 편미분 하는 것이다. 변수를 줄이면 원인을 찾기 쉽고 문제를 보정하면 우린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유의 파동을 같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세상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두 위, 아래 파동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위대한 무엇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삶에 오점을 남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도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끝이 있긴 한 걸까. 싶은 날들의 연속이어도 괜찮다. 아니 그런 날들이 없으면 사소한 일이 의미로 변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그 지점이 변곡점이 되고 파동을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치열하게 산 지난 수 십년의 인생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면 괜스레 어깨가 처진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현상도 누적된 원칙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판사의 양형 이유가 그렇듯 우리도 상황마다 어떤 이유를 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삶이 하찮을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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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어떤 직업이길래 이렇게 전문 작가들의 밥줄을 끊어낼 필력을 가질 수 있는가 생각했다. 생각이 짧았다. 얼마 간에도 수 백장의 판결문을 써내는 직업은 마감기일이 토막 난 전문 작가의 다름 아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쓰일 때 잠시 목적이 되었다 법정에선 수단이 된다. '어떤 양형 이유'는 처음으로 목적이 된 글이다. 참 오랜만에 깊은 사유를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문장으로 맛보았다. 아름답고 깊이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빛난다. 

 

어떤 양형 이유
국내도서
저자 : 박주영
출판 : 김영사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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