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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커(Joker), 어떻게 망상은 믿음이 되는가

by 마켓펀치 2019.10.16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조커는 끊임없이 웃는다. 이 기괴한 웃음과 영상의 높은 색온도는 시작부터 관객의 기분을 께름칙하게 만든다. 라디오를 통해 연일 보도되는 뉴스는 전반적 일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주입시킨다. 쓰레기 더미 문제와 거기서 자라나는 쥐, 그리고 슈퍼 쥐의 등장까지. 도시 전체에 걸친 상황은 심각했지만 한 편의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하루의 삶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일을 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어떤 강박과 어떤 불행과 어떤 울분이 반대급부의 기쁨과 뒤섞인 채 하루하루가 누적된다. 최악의 상황을 말끔히 바꿔 보겠다는 사람과 그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에 따라 조커의 마음속엔 망상과 믿음이 누에고치가 실을 뽑 듯 그의 정신을 에워싼다. 슈퍼 쥐라니? 그게 뭐 대순가? 아니면 날 말하는 건가? 하는 조커의 마음 속 물음이 장면마다 따라다닌다.

 

우리는 사회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허용 가능한 암묵적 선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법이 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일상적 믿음이 잘 동작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우리가 가진 상식과 이성은 이런 건강한 사회에서 잘 동작한다. 그러나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의 생각은 비이성적으로 과열된다. 믿음은 신뢰를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경우에 따라 망상으로 변질된다. 총으로 가위로 살인을 저지르고 심지어 부모까지도 죽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는 그에게, 영화 내에서 그런 사실이 대중에게 낱낱이 밝혀졌는지 알 순 없지만, 대중은 영웅의 지위를 부여한다. 

 

정상과 비정상, 망상과 믿음, 진실과 거짓.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이런 단어들 속에서 우리는 그 경계의 모호함을 본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가. 나의 믿음과 너의 망상. 그리고 거짓말. 상식은 이러한 기준선을 지칭하는 대표적 단어다. 상식은 내가 속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집단에서 비상식이 된다. 영화 '조커'는 정신병 환자의 범죄와 사회가 한 사람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드는 과정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다. '조커'의 장면 장면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모호하다. 당신은 어디까지 믿는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공공의 이익과 보편적 도덕성 위에서 지켜야 하는 원칙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이익과 정치적 편향, 믿음이 있더라도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살인은 어떤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는가? 도둑질은 어떤 경우에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판단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혹은 이런 경우는"과 같은 예외는 언제 만들어지는가. 영화 '조커'는 이런 물음을 내게 던졌던 영화였다. 

 

P.S. 그나저나 이런 영화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니 놀라웠다. 어떤 장면은 너무 잔인해 똑바로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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