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목소리로도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사는 것이 고단해도 바닥을 치고 힘을 내볼 수 있는 여력은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다. 그런 관계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대가없이 이해하고 호의를 배풀어주는 관계는 보잘 것 없는 방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다. 무심하지만 다정했던 체온은 삶의 이유로 충분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밤이 내리면 벽돌 한 장 쓸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차피 내일은 오지만 어쨌든 지금은 춥고 어두운 밤이다. 매일 걷던 길도 때론 쓸쓸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목구멍을 넘기는 밥이 이렇게 하기싫은 일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던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지면 걸음을 멈추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실컷 울다 비벼 닦은 눈물은 버쩍 말라 다시 상처가 된다. 길 위의 가로등은 뿌옇게 바래버렸다.
봄이 오는 것이 가끔 두렵다. 다들 싱그러운데 나만 시들어버린 잎으로 보일까봐. 추운 겨울은 다들 몸을 움츠리고, 두터운 외투에 자신을 감춘다. 그러나 봄은 아니다. 차가운 기운도 봄바람으로 포장하지 않던가. 내리막 길에서 밀어버린 리어카마냥 시간은 무섭게 흐른다. 벌써 새해의 서른 번째 밤이다. 미련이 남고 야속한 마음도 든다.
다 먹고 난 다음 식탁 위의 그릇을 보고 저걸 언제 치우나 싶어 밥알이 말라버릴 때까지 그냥 둘 때가 있다. 당연하게도 치우지 않으면 치워지지 않는다. 뭐부터 해야할까 하루 종일 고민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움직여야지. 작은 간장 종지 하나부터 싱크대에 담고, 다시 식탁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남은 빈 그릇을 옮긴다.
밥그릇을 쥐고 생각했다. 움직여야겠다. 그리고 매일 매일 사랑하고 고마워하면 되지 않을까.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당신은 거기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따뜻한 햇살과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다. 그러면 작은 간장 종지 하나 옮겨볼 용기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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