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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마를 부탁해

by rhodia 2019. 9. 25.

‘박하꽃’이란 표현을 보면서 요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은 어떤 풍경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풍경의 묘사가 가능하기는 할까.

 

내 어릴 적 엄마의 기억과 어슴푸레 눈을 뜬 아침 등을 쓸어주던 온기를 기억해냈다. 곶감이 익고 밤나무의 밤송이들이 툭툭 떨어질 그 무렵 마당에서 보던 밤하늘과 족히 수백 번은 누었을 마당 옆 도랑의 내 오줌 자국도 다시 살아난다.

“엄마는 부엌이 좋아?”
언젠가 네가 묻자 너의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엌에 있는 게 좋았냐고. 음식 만들고 밥하고 하는 거 어땠었냐고.”
엄마가 너를 물끄러미 보았다.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 가 어딨냐?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 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니들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믄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지. 너의 엄마는 왜 그런 걸 묻느냐? 하는 표정으로 너를 보다가 좋은 일만 하기로 하믄 싫은 일은 누가 헌다냐?” 중얼거렸다.

엄마에게 꿈이 뭐며 신념이 뭐고 그냥 그런 것이, 다 무엇인가.

배부른 소리일 뿐이었다.


사는 것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일로 가득 차 도무지 의미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이것이 저건지 저것이 이건지 알 길이 없는 울화통이 대부분을 채워두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식들.. 너 보고 사는 거지..

 

“집착하지 마세요”

“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돌아서면 상처투성이 말들을 쏟아냈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기는 했냐는 듯이 “밥 먹어” 하던.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식방식 웃는 것이……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두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열일곱에 시집와 열아홉이 되도록 애가 안 들어서니 니 고모가 애도 못 낳을 모양이라 해쌓서 널 가진 걸 알았을 땐 맨 첨에 든 생각이 이제 니 고모한티 그 소리 안 들어도 되네, 그게 젤 좋았다니깐.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것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랠 불렀네.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어이구, 내 새끼!”

 

엄만 어땠을까.

 

친구 아내의 유산 소식에 속상한 걱정을 털어놓던 내 말에 엄만, 두 번이나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말할 때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 처음 듣는 일이었으니까. 엄마의 삶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절망이 있었을까. 차마 그걸 물어보기엔 아직 난 몸만 큰 얘였어. 난 엄마의 눈물이 싫었어. 엄마가 울면 집에 비가 내렸으니까. 엄마가 울면 꽃도 죽고, 해도 뜨지 않고, 세상엔 아무 소리도 없었어. 커튼을 열지 않은 방바닥에 누운 외로움이 집에 가득했지. 그런 엄마의 눈물을 볼 자신이 아직도 없어. 내가 먼저 눈물이 나버리는 걸.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수능 시험이 끝나고 신문배달을 하러 새벽 3시에 나가도 언제나 불을 켜고 뜨듯한 부추전을 부쳐 냈던 엄마.

 

이젠 나도 부모가 되긴 하네.

 

다행히 좋은 아내를 만나 내가 엄마 같진 못해도 그 엄마가 내 아내가 되었으니 가끔 아내를 보면 고마움과 애처로움이 있어 미안해. 나의 아내이고 나의 아이이고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

요즘,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목구멍이 좁아진 듯 숨이 모자라 턱! 하고 호흡을 뱉는다. 이런 느낌은 정말 아끼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생각할 때 종종 나타난다. 

2013년 12월. 출근길 갑자기 아이 생각에 했던 메모 중에서.

아이가 생긴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한참을 밖을 서성였던 오후.

나도 저런 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소원이 이루어졌던 날.


처음으로 속이 매스껍다고 했던 새벽.
밤새 배가 아파 처음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좁쌀 같은 너를 확인했을 때.
분만실에서 간절하게 기다렸던 울음소리.

엄만 그 소리를 듣기까지 18시간 동안 수십 번의 발작을 했었어. 간질환자 같았지……

 

겨우 3살짜리가 두발 모아 점프를 했을 때, 우린 드디어 남자가 되었다고 키득거렸어.
아직은, 늘 눈에 보여야 마음이 놓이곤 했지.


엄마를 부탁해…..


그런데 <엄마를 부탁해>는 너무 무책임한, 죄책감이 드는 그런 제목이란 생각이 내내 들었던 나뿐인 걸까.

 

엄마를 부탁해
국내도서
저자 : 신경숙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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