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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MS 오피스와 국정감사

by rhodia 2019. 9. 25.

지난 6일 있었던 국정감사 도중 이은재 국회의원과 조희연 교육감의 MS 오피스와 아래한글 구매 수의계약에 대한 공방이 아직까지도 화제다. 어제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서 이은재 국회의원이 한동안 1위를 지키면서 그 관심사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국회방송 영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몇 가지 있어 글로 남긴다.

왜 소리를 지를까?

영상의 대부분이 일방적으로 소리 지르는 장면이다. 국정감사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따져보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고 논리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얘기하면 될 텐데 왜 계속 소리를 지를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욱하며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를 돌아보면 “어쭈 네가 내 말을 안 들어?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이 이미 근저에 깔려 있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왜 화가 나게 되었는지 부모는 기억조차 못한다. 더 큰 소리로 아이를 찍어 누르는 것이 전부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야만 그제야 씩씩거리며 돌아선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의 말에 따르면 부모가 잘잘못을 아이와 대화하지 못하고 냅다 소리부터 질러버리는 것은 부모의 낮은 자존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비슷한 일들은 회사에서도 일어난다. 회사의 임원들은 대부분 근엄하다. 한 마디 건네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큰 소리라도 나게 되면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후속조치만 있을 뿐이다. 반면 실리콘밸리 같은 외국 기업의 대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중요 이슈에 대해 대표가 직원들을 모아 두고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답변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물론 한국의 기업 중에도 이런 기업이 많다.) 이 둘의 차이는 사안에 대한 전문성과 자기 생각의 존재 여부다. 함께 토론할 문제에 대해 지식도 없고, 생각도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질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근엄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권위가 그렇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위에 소리 지르는 부모와 근엄한 임원 이야기를 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와 상황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펼쳐두고 국정감사 장면을 되짚어 보니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었겠나 싶기도 하다.

누가 이런 관계를 만들었나.

영상을 보면 한 사람은 앉아 있음에도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고, 한 사람은 곧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처럼 사납다. 누가 두 사람의 이런 관계를 만들었을까? 두 사람 모두 국민의 힘을 위임받은 것임을 잊은 것일까? 국정감사 본래의 좋은 취지가 “어디 한 번 국정감사 때 보자고” 하는 보복 기회로 여겨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유지보수

이은재 국회의원과 조희연 교육감 모두 ‘MS 오피스’ 사건으로 놀림과 조롱감이 되고 있다. ‘컴알못(컴퓨터 알지 못하는 사람)’이란 별명도 붙는다. 개떡과 콩떡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교육감과 국회의원이 소프트웨어 유통 구조와 특정 기업의 총판 및 파트너 관계를 꿰차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소프트웨어 구매를 진행해보지 않았으면 잘 알지 못할뿐더러, 교육감과 국회의원은 이런 일 말고 국민들이 맡긴 더 중요한 난제가 수북하니 말이다. (*참고: 교육청은 MS 오피스 구매를 하기 위해 MS 오피스를 판매하는 여러 파트너와 실제로 입찰 경쟁을 진행했고, 한글은 판매자가 1곳뿐이어서 입찰 없이 수의계약의 진행함.)

 

국정감사 영상을 보면 이은재 국회의원도 계속 종이를 보며 잘못을 지적하고, 조희연 교육감 주변에서도 계속 사실 관계를 바쁘게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이 둘 모두 직접 업무처리를 한 담당자가 아니고, 교육감이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반 기업에서도 볼 수 있는데, 조직의 인원이 10명만 넘어가도 팀장은 구성원이 하는 일의 모두를 상세히 알 수 없다. 오히려 상세히 알고 지시하려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Micro Management)가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비실무자가 대표로 실무에 대한 대화를 하는 장면도 대기업에서는 흔히 보이는 장면이다. 실제 업무는 을 입장인 하청 업체가 하는데, 이에 대한 보고는 갑의 입장인 대기업 팀원이 자신의 팀장에게 한다. 문제라도 생기면 팀장은 임원에게 불려 나가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대기업 팀장) -> (대기업 팀원) -> (하청업체 직원)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그전까지 대기업 팀장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엉뚱한 소리를 하기 일쑤다.

 

사실 이번 국정감사 영상을 보며 ‘MS 오피스’ 건이 국정감사에서 거론될 문제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관계 확인과 합당한 책임은 실무를 담당한 직원이 그 내용을 확인하고 답할 수 있도록 서면이나 별도의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개 기업에서도 미팅 전 안건에 대해 사전에 전달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데, 국정감사에서 보이는 장면은 마치 “이건 몰랐지?” “이런 건 어때?” 하듯이 질문하고, 듣는 사람은 듣기 평가를 하듯 초긴장을 하고 듣는 모습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좀 헷갈리게 한다.

 

시스템도 규정도 덩치가 커지고 세월이 지나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지보수를 한다. 국정감사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맞는 옷을 계속 맞춰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김영란법을 만든 국민이 아니던가.

 

 

2차 편집된 영상은 영상 편집자의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위와 같은 원래 영상을 본 후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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