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널 사랑하지 않아

by 마켓펀치 2019.09.25

어반자카파

 

우연히 새벽 출근길 버스에서 이 노랠 들었다. 마침 창 밖으론 지난여름 뜨겁고 북적북적했던 주말 농장 터가 보였다. 작년 말 새로운 토지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말 농장은 일 년만에 폐쇄되었다. 덕분에 비료를 뿌리고 땅을 두 번은 더 갈아엎으며 정성을 쏟았던, 나름 기름졌던 서너 평 정도의 우리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잡초가 무릎 높이로 무성히 자라 올랐다. 어슴푸레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수확철이던 가을의 그곳은 얼마나 북적이며 활기가 돌았는지 모른다. 농장 전체가 대충 수 백 평은 되었으니 말이다. 연신 씨와 모종을 심고 물을 길어 날랐다. 몇 개 열리지 않았던 딸기와 좀 더 심을 걸 했던 방울토마토, 파도 파도 끝없이 나왔던 고구마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도 열심이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헤어짐의 이유가 이제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연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냥 그게 전부라는 뜻은 어떤 일말의 여지도 없으며,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든 기억해 내 용서를 구할 수도 없을을 뜻하니까 말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연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것 때문에 너를 좋아하고, 저것 때문에 너를 좋아하고, 나의 이런 습관 때문에 너를 만나게 됐고, 어떻게 너는 그때 거기에 있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 이유를 찾아낸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실 수 천 가지 정도 되며 그것을 일일이 말하기엔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의 모습이다.

 

헤어짐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이라는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는 사람은 그동안의 서운 했던 일, 미안했던 일, 잘못한 일, 모든 일들을 떠올려 되돌리고 싶지만,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연인 앞에 무너진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침묵을 깨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탓이다. 사실 그냥 이제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내면엔 수 천 개의 이유가 있다. 이런 모습도 미워보이고, 저런 행동도 마음에 안 든다. ‘그냥’으로 대체되는 이별 통보는, 연인이 보낸 수 만 시간의 합처럼 짧았다가 길어지고, 설레었다가 지루해지는 복합된 감정의 누적이다.

 

 

 

너무 단호하고 차가운 조현아의 목소리는 이 앨범에서 빛을 발한다. <널 사랑하지 않아> <궁금해> <다 좋아> <Nearness Is To Love>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면>으로 엮인 앨범 ‘스틸(still)’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그대로 담았다. ‘싱글’이란 이름으로 발매되는 요즘 트렌드에선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다.

 

노래는 듣는 내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잡초만 무성해진 새벽녘의 버려진 농장 터도 떠올랐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폭설  (0) 2019.09.26
머리 깎던 저녁  (0) 2019.09.26
널 사랑하지 않아  (0) 2019.09.25
중국으로 떠나는 여행자/직장인을 위한 필수 팁  (0) 2019.09.25
아이들과 가볼 만한 ‘달동네 박물관’  (0) 2019.09.25
엄마가 딸에게  (0) 2019.09.25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