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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아이들과 가볼 만한 ‘달동네 박물관’

by rhodia 2019. 9. 25.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수도권 근교에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어떨까? 이곳은 1960~70년대 달동네를 테마로 인천 동구청에서 지난 2005년 10월 25일 건립한 박물관이다. 입장료도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으로 무척 저렴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크게 달동네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제 1, 2 전시실과 어린이들을 위해 뻥튀기 체험, 연탄 나르기, 수레 목마, 제기차기 등을 해볼 수 있는 달동네 놀이 체험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실

세심하게 꾸며진 세트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와도 무척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물지게나 연탄불 갈아보기 체험도 재미를 더해준다.

 

아직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정지(부엌)와 점빵(가게)의 모습도 정겹다. 나는 이런 환경이 일상은 아니었지만 시골 할머니 댁을 방문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의 벽보. 시간까지 정해두고 쥐를 잡았다니, 그리고 이게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라니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제일 아래 삽화와 함께 글이 있는 ‘이달에 알아 둘 일’ 은 지금 봐도 너무 잘 만들어졌다.

 



전시실 끄트머리에 있는 가게에서는 옛 군것질 거리를 포함해 추억의 물건들을 팔고 있다. 옆에 있는 만화 가판대에서는 보고 싶은 만화를 자유롭게 꺼내 볼 수 있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송현동 언덕배기 꼭대기에 있다. 그동안 수도국산의 송현동은 솔빛로라는 새로운 주소로 바뀌었지만, 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골목골목에는 그 시절의 기억이 녹아 지금의 모습과 묘하게 겹쳤다.

 

 


배경지식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몇 가지 읽어볼 만한 글을 가져왔다.(지금까지 본 정부기관 홈페이지 중 가장 잘 만들어진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족함이 없었다.)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수도국산’ 이란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다.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이 자그마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 산은 산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 고개) 동, 송림(松林, 소나무 숲) 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 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 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 (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수도국산에 달동네가 생길 때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 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이어 한국전쟁(6.25)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 충청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침내 181,500㎡(5만 5천여 평)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달동네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 혹은 월세방이 많은 동네라는 의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중반 사이에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 노후 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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