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한계, 시장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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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대부분의 경우 노후한 건물의 소유주가 바뀌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고, 이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도 인사동, 홍대, 북촌, 대학로 등 다양한 지역에서 꽤 오랫동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원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최근엔 경주 ‘황리단길’ 역시 이와 같은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것 같다.
도시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구시가지와 노후한 건물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런 동네로 들어와 예술과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도시 재생 측면에서 적극 환영할만하다. 지자체 역시 외부 관광객의 유입과 소비 활동의 증가는 재정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특색 있는 동네의 탄생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독특한 개성과 매력으로 무장한 도시는 늘어나는 방문객에 비해 토지와 상점의 크기와 개수는 사실 상 정해져 있다 보니 임대료와 관련 부대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니 가격이 뛰는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법은 없는 걸까?
단순히 착한 원주민이 비싼 임대료에 밀려 쫓겨나는 안타까운 상황으로만 보이긴 이 문제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입장과 이익이 얽혀있다. 지자체 관계자, 임대인, 임차인, 관광객, 초기에 마을에 정착했던 예술가, 부동산 관련 업자 등이 그들이다.
단순히 착한 원주민이 비싼 임대료에 밀려 쫓겨나는 안타까운 상황으로만 보이긴 이 문제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입장과 이익이 얽혀있다. 지자체 관계자, 임대인, 임차인, 관광객, 초기에 마을에 정착했던 예술가, 부동산 관련 업자 등이 그들이다.
2017년 6월 뉴스위크(Newsweek)는 ‘당신의 동네는 ‘아트워싱’으로부터 안전합니까?’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 보일하이츠 지역의 사례를 다뤘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제공자가 건설사나 분양사, 부동산 중개인이 아니라 ‘예술가들’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아트 갤러리 같은 것은 만들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면 주변에 커피숍, 레스토랑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재개발이 이뤄지고 결국 쫓겨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잠깐 거주하면 이를 이용해 개발 이익을 취하는 전형적 도심 재생 수법’을 기사에서는 ‘아트워싱(Artwashing)’ 이라고 언급했다. 원주민 일부는 예술가들이 마을을 떠나게 만들기 위해 가게와 갤리리 등을 공격하는 등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임대료 상승 자제를 약속하는 ‘상생협약’, 건물주에게 약 3,000만 원가량의 리모델링 비용을 지급하고 건물주는 일정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장기안심상가’, 낮은 이자로 직접 건물을 매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산화 전략’, 정부가 직접 거점 상가 등을 매입하여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에선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생협약’은 강제성이 없어 사실 상 무용지물이며, 강제성을 가지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개인의 사유재산 침해, 또는 아예 예술가들에게 상가를 임대해주지 않거나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등 풍선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리모델링 비용을 지급하여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자산화 전략’은 일정 기간의 임대료 상승이 리모델링 비용보다 반드시 적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건물주들이 응할 것이다. 3년간 임대료 상승이 9,000만 원으로 예상되는데 3,000만 원 리모델링비를 지원받고 임대료를 동결 혹은 소폭 상승을 약속할 건물주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저리에 건물을 매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정책 역시 기본적으로 그들이 낮은 임대료를 찾아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다.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건물 가치 상승에 따른 롱포지션을 취할 경우만 가능하다. 이렇게 매입한 건물의 가치가 상승할 경우 재임대 혹은 매매 후 떠날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직접 임대, 공급하는 방법은 부동산 시장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사례로 비춰 볼 때 전체 물량 대비 그 수량과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면에서 모종린 교수의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완벽한 골목상권’ 이란 글은 시사점이 크다. 하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 일본의 기치조지의 예를 들었는데 글의 말미에도 밝히고 있듯이 마을에 사찰 소유지가 많아 상가 개발이 어려웠고,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 후 임대차 시장의 불황 속에 지속적으로 낮은 임대료가 유지되는 등 특수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모든 이익 관계자가 행복할 수 있는 해법은 사실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요즘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접하며 일방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한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는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모든 이가 부와 권력 혹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무언가를 공평하게 가져 같은 출발선 상에 서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지역을 들여다보면 저가에 매입한 부동산의 가치가 크게 올라 큰돈을 벌어 동네를 떠난 원주민도 있고, 지역 경제 활성화로 더 큰 세수를 벌어들이게 된 지자체가 있을 수도 있다. 예술가가 일궈둔 동네의 가치를 부동산 중개 이익으로 가져간 업자도 있을 수 있고, 하루아침에 쫓겨난 가난한 예술가가 있을 수도 있다. 이 가정의 반대 역시 가능하다.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완벽한 골목상권’ 글의 말미에 공동체 문화를 강조한다. 처음 예술가들이 들어와 독특한 문화를 일구면서 사람들이 붐비게 되었고 그 결과로 건물의 가치가 상승했다. 그들이 떠난 다는 것은 높아진 임대료를 떠받칠 기둥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셈이다. 마을 성장의 지속성 역시 담보할 수 없다. 천편일률적 프랜차이즈로 가득 찬 동네를 걷고 싶은 사람들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부터 더 많은 황금을 가지기 위해 거위 배를 갈랐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기 있는 지역의 임대료 상승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반응이었듯, 예술가들이 만드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문화의 가치가 결국 지속적인 이익과 더 큰 총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시장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모종린 교수의 공동체 문화 형성과 상권 거버넌스는 그 훌륭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7월 1일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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