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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밤이 선생이다

by rhodia 2019. 9. 25.

문장의 아름다움


고전문학이나 이런 산문 글을 보다 보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껴요. 그것이 수십, 수백 년 전에 쓰였던 글이라 해도 바로 오늘 겪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삶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쾌감과 함께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바람을 보게 되었죠.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쓰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고요. 책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이 많은 자동차와 빽빽한 주차선들 사이로 무엇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는 비극이 떠올라도.. 또 그런 삶을 감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미끄럼틀의 색동을 보며 희망을 보게 되고 말지요.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엄정한 글쓰기와 한글의 치밀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전율을 일으켜요. 어떤 걸쩍지근한 은유도 없이 눈앞에 그림을 그려내는데 가끔은 숨이 막혀 한꺼번에 몰아쉬곤 했어요.

 

그러면서 엄마 생각이 났죠.

엄마한테 선물해주면 좋아하겠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2014.06.26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밤이 선생이다
국내도서
저자 : 황현산
출판 : 난다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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