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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by rhodia 2019. 9. 25.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석지영 에세이


이 책은 나에게 참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책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5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 책 읽기와 글쓰기
  • 좋아하는 일 찾기
  • 완벽함 탈출하기
  • 나에 대해 생각하기
  • 아이들

석지영 교수는 참 많은 경험을 열정적으로 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정말 원하는 일을 결국엔 찾았을 수도 있다. 이민자로서 겪었던 많은 아픔과 실패, 고통이 있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방향의 길에 서 있을 때도 이 길이 맞을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최선과 열정을 다했고, 이런 삶의 태도는 모든 것의 단단한 기반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 읽기와 글쓰기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단순히 인상 깊은 구절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마음에 들어와 흐릿한 생각들을 산산이 부순 느낌이었다.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읽을 수밖에 없는가?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가? 에 대한 답이 여기 있었다. 또, 완벽함으로 생긴 두려움으로 주저했던 글쓰기에 대해서도 큰 조언을 받았다.

말콤 교수는 매일 글을 썼는데, 하루 1.5쪽. 절대 거르지 않기. 이렇게 하다 보면 한 달 후에는 한 챕터를 완성하게 되고 9개월 후에는 책을 한 권 낼 수 있다. 이런 식이면 글쓰기가 거대한 기대로 부풀려지기보다는 평범한 습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빌은 과하게 높은 기대를 품지 말고 규칙적으로 쓸 것.

주제에 대해 다 알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기 시작할 것. 확신이 서지 않는 단어라도 일단 써 보고, 내용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완전히 다시 쓸 것. 쓰고, 연구하고, 일고 다시 쓸 것. 이 과정을 반복할 것. 글쓰기는 배움의 한 방법이지, 학습을 마친 마지막 단계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번에 조금씩 배운다는 불완전한 과정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일 찾기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는 부분이다.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첫 직장생활을 대학 4학년 생활과 병행을 하면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6년이 지났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사실 그렇게 간절히 갈구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이렇게 살다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퇴근길 하늘을 보는데 어두웠다. 하늘에 색이 있다는 것 이제 알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완벽함 탈출하기

새로운 시작은 설렘과 흥분을 가져다준다. 이런 기분은 나를 열광하게 만드는 ‘목표’를 만났을 때 경험한다. 그렇다면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주변의 환경이 변하여 그런 경우도 있을까? 있다!

 

나는 ‘관계’를 만났을 때 이런 감정을 느낀다. 늘 하던 행동과 생각과 말들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 될 수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흥분되는 새로운 ‘관계’는 ‘기대’를 동반하고 이렇게 주변의 기대가 더해지는 경우, 현실의 ‘나’를 뛰어넘어 더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럼 무언가를 더 보여 주어야 하는데, 나의 경우 대부분 위축되고 더 많이 실수하고 정말 멍청이처럼 행동했던 경험이 더 많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근저엔 늘 ‘완벽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산산이 깨지고 난 뒤에야 난 좀 더 자연스러워졌고 본질적이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석지영 교수가 강의실에서 겪었던 고백은 내가 겪었던 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하게 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직장생활에서 ‘번아웃’으로 연결되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에 대해 생각하기

나는 무엇에 열광하는가?
나는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나는 우정의 어떤 측면이 내게 중요한가?
나는 어떤 과외활동을 즐기는가? 했는가? 할 것인가?

 

무엇이든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건, 글쓰기 건, 힘들더라도 노력해서 그런 것을 익힐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쉬워질 때까지, 아니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 하고 또 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늘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봤고 탐구했다. 또, 그것을 따라가려 했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답게 여러 가지 인생의 노하우와 팁을 전달하며 나누었고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잘 되지 않았다.

 

왜 였을까?

 

매번 여러 외적인 요인들을 주요 범인으로 지목하긴 했지만 진짜 답은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도 내가 될 수 없음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그래서 단 한 치수도 맞지 않는 나를 상자에 끼워 맞추기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 상자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나는 나만의 상자를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피부로 깨달았다. 그러려면 ‘남’이 아닌 ‘나’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했다. 나는 무엇에 열광하는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는가? 이른 아침 햇살 하나가 차 앞유리로 얼굴을 때렸다. 눈을 감았고, 약간은 선분홍 빛을 내는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싸한 아침 공기도 콧속으로 들어왔다.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행복하단 감정이 생겼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들

그것이 아이들은 엄마나 엄마 친구들한테 재능 있고, 예쁘고, 똑똑한 모습을 보여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조건 없이 사랑받고 아낌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라야 한다. 그것이 주변의 격려와 환경이었건 석 교수의 성향과 재능이었건 당장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내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어떤 시선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부모가 만든 형상을 바라보게 하고 싶진 않다. 삶의 선택의 순간마다 행복해 보이는 삶이 아닌 행복한 삶으로 움직이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내 자식이 온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스스로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확신을 갖도록 격려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그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이 내가 끊임없이 ‘나’를 찾아 헤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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