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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넥타이를 맨 바퀴

by rhodia 2019. 9. 23.

참 적절한 시점에 읽게 된 책이 아닌가 싶다. 회사에 기증한 도서를 회사 동료가 가지고 왔는데, 좀 울긋불긋 한 책 표지 사이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는 것 아닌가?

“그레고리”

이 감사한 바퀴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책을 집어 들고 난 후 정확히 4시간 55분 뒤,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어떤 내용일까? 저녁때가 다가와 느꼈던 배고픔보다 조금 더 큰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폈는데 목차를 보자마자 “자기개발서구나!” 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면서 “덮을까?”라는 생각했었다. (나는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자기개발서류’의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부류의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음을 비추어 볼 때, ‘~해라. ~하지 마라’의 이야기가 잔뜩 들어찬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진 잘 알고 있다. 퇴근길 동안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가방 속에 있던 “검색2.0 발견의 진화”의 길 찾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봐야 했는데 이 내용(정확히 말하면 고 근처 몇 장만) 은 아침 출근길에 잠시 느꼈던 따분함의 기억이 살짝 묻어있었다.

 

저녁 퇴근길엔 책을 들고 머리로 출입문에 몇 번씩 노크를 해 대거나, 혼자 깜짝 놀라 깨는 굉장히 민망한 상황을 가끔씩 만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상콤한’ 내용들로 머릿속을 채워 넣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솟구친다. 그래! 한번 보지 뭐..!


첫 번째 바퀴벌레의 성공법칙을 설명하는 챕터의 시작이 임백준 님(블로그)의 시작과 흡사한 달콤함을 풍기고 있었기에 몇 장 더 넘겨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와! 기가 막히게 진부한 내용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 장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내용의 구성이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좀 더 읽어 보기로 했다.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바퀴벌레와의 대화하며 참으로 맛깔스럽게 뽑아낸 한국어 번역까지 뭔가 읽는 사람들 빨아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번역된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 본 것이 몇 되지 않는 것 같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 역자님과 곽용재 님의 글처럼 참 보드랍다.)

“그러니까 당신은 반대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지 거기에만 집중하면 돼.”

이 문장 하나가 요즘의 내 삶을 일부 바꿔놓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말을 했던 책 속의 ‘그레고리(바퀴벌레)’가 그랬다고 해야겠다. 이런 나의 심적 변화에는 위대한 능력과 훌륭한 성품으로 이야기하는 저명한 누군가가 아니라, 겨우 바퀴벌레 한 마리.. – 가끔 불 꺼진 거실에 잠입해 있다가 새어 나온 불빛에 흠칫 놀랐던 그 하찮은 녀석 – 여서 그랬는지.. 애초에 소위 잘난 녀석이 시작하는 끝내주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레고리를 보며 책 속에서 조차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을 가졌던 옹졸한 나의 마음이었던 것은 맞으니까.

 

이 책에는 총 10개로 이루어진 바퀴의 성공법칙이 나온다.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책장이 줄어드는 것이 너무 아까울 만큼 재미있고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다. 여기서 10개의 법칙을 모두 나열한다고 그것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머지 9개의 법칙이 궁금하다면 꼭 한 번 읽어 보셨으면.

 

서점에 서서 읽어도 좋을만 한 양이고, 그렇게 읽기에는 너무 아깝다면 한 권 사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었던 나의 직장동료. 이 책을 번역해 주신 조행복 님 (이런 번역글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으로 읽었다면 지금의 감정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끔찍하게 귀여운 그레고리.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설레게 했던 그녀 ‘카렌’ 참 괜찮은 책을 또 한 권 만나게 되어 감사했던 하루.

 

넥타이를 맨 바퀴
국내도서
저자 : 크레이그하비 / 조행복역
출판 : 황금나침반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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