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고등학생이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달그락거리는 의자 소리가 둘 사이의 불편한 공기를 비집고 든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은 한 명의 주먹질과 함께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정신없이 휘둘러대는 주먹과 발길질은 말릴 틈을 주지 않는다. 씩씩거리는 소리와 욕설이 난무한다. 한 명이 쓰러져야 끝나는 싸움인 것이다. 교실 벽에 붙은 오래된 스피커에서 촌스러운 수업 종소리가 울린다. 주변 구경꾼들이 하나 둘 자리로 돌아가고 흥분의 잔여물이 남은 현장을 방치한 채 당사자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시작해 극적으로 치달았던 싸움이 끝나게 된 지점이 가끔 말도 안 되게 사소하거나 엉뚱한 것이었음을 발견한다. 서로가 이겨야 하는 상대는 분명했지만 싸움의 종료 조건으로 고려하지 않은 제3의 무언가가 상황에 변동성을 주고 비자발적으로 현장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타다와 택시
어제 타다의 불법성에 대해 검찰의 기소가 법원에 의해 무죄로 판결되었다. 택시 업계는 길길이 날뛰며 다른 수단의 강경 투쟁을 예고했고, 스타트업 업계는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치워진 것에 대해 환호했다. 법원의 판결은 늘 시민 사회의 후행지표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시대의 흐름을 어느 정도 반영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택시와 타다는 이번 법원의 판결에 새로운 기준선을 긋고 각자의 포지션을 정하게 될 것이다.
택시 번호판 가격의 변동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유형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허가라는 진입 장벽을 넘는 대가로 형성된 가격은 허가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 이번 판결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과 택시 회사는 그들의 수익 구간을 보전하거나 가능하다면 늘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할 것이다. 타다는 사업 확장에 늘 걸림돌이었던, 디딜 수 있는 땅을 확보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더 공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싸움 종결의 핵심은 '타다의 불법 여부'가 아니라 '더 나은 이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근시일 내에 뚜렷한 성과를 보이기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이 싸움을 끝낼 종결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상호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투쟁 대상이 사라진다. 변동성을 동반한 과도기에는 옳은 지향점을 찍고 움직이는 쪽이 대부분을 가져가게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국과 중국
2020년 1월 15일 지난하게 끌어왔던 미-중 1차 무역합의가 이뤄졌다. 상호간에 현재 상황에서 내줄 수 있는 카드를 던지고 후일을 기약한 것이다. 이 싸움이 몇 년 안에 종료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 두 나라 간의 분쟁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패권 다툼이며 무기 대신 무역으로 가장 싼 전쟁을 시작한 것일 뿐이다. 무역은 서로가 주고받을 카드가 분명하고 합리적 명분을 확보하기 쉽기 때문에 적은 타격과 빠른 결론을 이끌 수 있다.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에너지와 금융을 필두로 보다 노골적인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던 와중 중국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등장했고, 신종 바이러스(코로나19, COVID-19)로 밝혀지면서 세계 공급망 가운데 있는 중국의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중국 내 누적 사망자도 2천 명을 넘어섰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7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의 금리를 0.1% 포인트 인하(3.24%->3.15%) 하면서 약 34조 원을, 역환매조건부채권을 운영해서 약 17조 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했다. 총 약 50조 원을 시중에 푸는 것이다. 추가로 오늘(20일) 대출우대금리(LPR)을 1년물 0.1% 포인트(4.15%->4.05%), 5년물 0.05% 포인트(4.80%->4.75%)로 인하했다. S&P는 중국의 경재성장률을 5.7%에서 5.0%로 낮춰 발표하면서 중국의 상태가 어떤지 표면적으로 예견했다. 매년 6%가량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온 중국이 1%나 낮춘 전망치를 받았다는 것은 내외부적으로 상당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높은 경제성장률로 인민들의 삶이 풍족하게 유지되어야 현재 사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들이 자유의 가치를 희생하면서 공산당 독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기업 일부는 소위 '코로나 바이러스 채권'이라는 것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영업 매장과 생산 설비 가동이 마비되면서 운전자금이 부족해지자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쿠폰 금리가 2~4%라는 것인데 중국의 대출우대금리(LPR)이 4.05%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은행에 넣어도 4% 이상 받는데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채를 저런 금리를 주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 채권은 대부분 중국 국영 은행과 다른 기업이 산다. 대신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최소 10%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써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예약 항공편의 60% 이상이 취소되며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심천(Shenzhen) 에어라인도 약 1천억 원의 '코로나 바이러스 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정부가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사주면서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하강과 예상치 못하게 공급하게된 유동성은 미-중 무역전쟁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은 작년부터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하고 있고,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추가 공급된 유동성은 공장 정상화가 늘어지면서 기업이 부실화되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할 파괴력으로 중국을 강타할 것이다. 세계 경제도 물론 타격을 받겠지만 중국은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금융이 부실화되면 이를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달러뿐이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수업 종이 울린 것이다. 중국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나, 미국과 합의문을 작성하면서 계획했던 수 십장의 카드가 이미 효용을 잃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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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욕망과 공포를 통해 위, 아래로 움직임을 만들고 촘촘히 배열된 현실을 뒤섞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위기와 기회는 거기서부터 자란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YC 샘 알트만(Sam Altman)과의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어떤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변동성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된 가치를 누가 더 많이 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욕망이 있는 곳엔 늘 변동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욕망으로 둘러 쌓여 있다. 좋은 가치를 끈기있게 다듬어 둔다면 변동성은 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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