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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이폰6 32GB 단종으로 본 기업 ‘애플’의 경쟁력

by rhodia 2019. 9. 25.

아이폰6가 출시되면서 출시 용량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 애플은 32GB 모델을 없애는 선택을 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회사원’이 하는 합리적 선택

애플의 이런 의사결정은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사용자를 뺏길까 봐 두려워, 다양한 용량을 출시하거나 기존 프레임을 유지하려 했을 경쟁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애플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나 리더십이 약해졌다는 언론의 기사가 이 사건으로 인해 적어도 나에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늘 합리적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만약 당신이 회사의 출시 용량에 대한 결정권 자이고 ’ 32GB 모델을 출시하는 것’과 ‘구매자 이탈을 만들 리스크를 가지는 것’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인가?” 정도의 가벼움이 아닌, 잠재적 구매자 이탈에 따른 매출 하락과 마켓셰어 축소의 결과를 가져오는, 그래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어땠을까?

 

합리적 선택은 32GB 모델을 출시하는 것이다. 

비용이 증가하고 몇 가지 부수적 문제들이 뒤늦게 발견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좋은 사무실에서 좋은 차를 타고 애플에 출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애플이 가지는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업은 개인이 아니다. 

수백, 수천이 모여 만드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은 하나의 비전과 미션으로 움직이지만 미시적 의사결정 속엔 개개인의 이해가 존재한다. 가끔 멍청하고 이해 안 되는 최종 제품과 광고는 그런 결과의 산물이다. 이번 32GB 모델의 단종을 보며, 개인의 이해보다 거시적 관점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애플의 환경에 놀랐다. 직원 100명만 넘어가도 사내정치가 생기니 말이다.

 

이제 애플엔 스티브 잡스가 없다. 

강력한 경영자가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극명한 장단점이 있으며, 좋든 싫든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말이다. 이런 기업은 일사불란하지만 사실은 오합지졸이며 지속가능성이 낮다. 스티브 잡스는 흔치 않은 사람이지만, 거의 모든 경영자들이 – 임원만 되어도 – 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흔하다.

(내가 생각하는) 32GB 단종에 따른 장점은 한 부서에서 추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 회사가 어떤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이 이런 의사결정을 끌어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것이 팀 쿡 리더십의 건재함이든 회사가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이든 말이다.


전략적 시각에서 본 32GB 모델의 단종

누가 앱스토어의 매출을 만드는가? 

Well Fargo Securities, LLC가 2012년 아이폰5 출시 당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48%의 점유율로 아이폰 16GB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아이폰6를 출시하기까지 2년이 걸렸는데 이 점유율이 크게 변할 것 같진 않다.

 

반면 앱스토어에 출시되는 앱의 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애플은 셀룰러에서 다운로드 가능한 용량을 20MB에서 50MB로 상향 조정했다. 2012년 2월 출시된 Infinity Blade는 624MB였지만 2014년 10월 출시 된 Infinity Blade3는 1.92GB로 약 3배 증가했다.

용량 부족으로 인한 구매 및 다운로드의 감소는 비옥한 앱스토어 생태계를 서서히 망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앱을 구매할 때 가격이 아닌 용량이 장애물이 된다는 것은 애플에게 치명적이다. 가격으로 인한 구매 결정 지연은 마케팅이나 고객의 니즈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다르다. 아이폰을 한 번 구매하면 최소 몇 개월에서 몇 년은 바꾸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용량이 부족해서 앱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은 애플이나 사용자가 쉽게 해소하긴 어렵단 얘기다.

 

이번 결정으로 애플은 앱스토어 매출을 만드는 주류/비주류 고객을 확실히 구분 지으며 주류 고객이 구매에 있어 용량으로 망설이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고, 앱스토어에 돈을 거의 쓰지 않지만 아이폰을 쓰고 싶은 사용자들을 잃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폰을 살까? 

Well Fargo Securities, LLC가 2012년 아이폰5 출시 당시 발표한 통계를 보면 52% 과반의 사용자가 아이폰의 기능, 즉 소프트웨어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애플의 제품에서 디자인을 비롯한 최적화된 하드웨어는 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하드웨어가 아닌 ‘아이폰’으로 만들고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iOS를 비롯한 앱스토어의 수많은 앱의 품질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참 많다. 그중 제품의 용량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생태계의 근간을 유지하는 기초공사와 같다. iOS 운영체제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되면서 사용자들은 간편하게 고품질의 최신 운영체제를 우유 데우는 정도의 노력으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개발자들에게 엄청난 혜택이다.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에 비하면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를 때고 달리는 효과와 같다.)

 

2014년 11월 21일 기준, 무려 95%의 사용자들이 최신 OS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iOS8의 낮은 업그레이드 비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왜일까? 터치 몇 번이면 최신 운영체제를 내려받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9to5mac의 기사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업그레이드를 하다가  대부분 중도 포기했다.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많은 여유 용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폰5 16GB를 사용하고 있는 나도 몇 번의 OS 업그레이드를 위해 아껴두었던 사진과 용량 큰 앱들을 순서대로 지웠다. 아내는 이런 고민을 하다 업그레이드를 포기했다.

 

장기적으로 용량으로 인한 OS 업데이트 문제는 애플에게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최신 OS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줄어줄 것이고, 안드로이드와 같이 사용자 OS는 파편화될 것이다. 개발자들은 주 타깃 사용자가 분포한 OS 버전을 조사하다 결국 가능한 가장 낮은(오래된) 버전의 OS를 지원하도록 의사결정하게 될 것이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개발자 생산성 하락과 비용의 증가는 최신 킬러 앱들이 안드로이드에서 먼저 출시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iOS의 프로그래머가 감소하게 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삼성이 갤럭시 엣지라는 – 어찌 보면 혁신적인 – 신제품을 내놓고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는 건 생태계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년에 단종될지도 모를 갤럭시 앳지를 위해 누가 시간을 투자하겠는가? JAVA를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잠정적) 프로그래머를 보유한 안드로이드도 이렇다. 애플이 지금과 같은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용자들이 보다 쉽고 빠르게 OS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개발자들이 만든 앱도 설치하려면 지금과 같이 적당한 용량은 애플에게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마치며

애플은 이번 32GB 모델의 단종으로 대당 평균 판매 가격을 크게 올리며 영업이익에서도 큰 이익을 봤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부가적이지만, 부가적이지 않은 소득도 챙겼다. 이번 32GB 단종으로 애플이 ‘넛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았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따라잡고 이기기 위해선 이제 복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전략이고, 소니 TV를 따라 만들던 시절의 방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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