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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맞아 KBS에서 <오늘, 미래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김정운 교수 특강을 했다. 티브이에서 개인 서재의 오디오를 보여주시던 모습을 끝으로 소식을 접할 수 없었는데 홀로 일본에 가 계시는 동안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집필하셨나 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강의를 다 보고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책을 사서 보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우리가 창조라 일컫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것과 저것을 편집하여 새로운 맥락으로 내어 놓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편집을 하기 위해선 머릿속이든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든 풍부한 자원이 있을수록 더 유리한데 이런 생각들이 스스로의 해석과 당시의 맥락을 거쳐 새로운 지식으로 편집되고 가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열광한다. 그렇게 지식을 재조합하여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온 사람으로 김용옥 선생님과 이어령 선생님이 나왔다. 김용옥 선생님은 고전 텍스트를 통한 깊이 있는 크로스 텍스트를, 이어령 선생님은 끝없는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폭넓은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시는데 각각의 방법에서 나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중간의 카드를 이용한 독일 학생의 에피소드 부분은 큰 공감을 하면서 보았다. 나는 노트를 쓸 때 늘 강박에 사로잡힌다. 내가 확장하고 조합할 내용이 이 작은 노트 페이지에 다 들어갈까 싶기도 하지만 양 페이지와 그 뒷 페이지에 써질 내용들이 종이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머리 속의 생각을 넣고 빼기엔 여간 거슬리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가끔은 큰 맘먹고 (비싼) 포스트잇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백의 낭비와 뭔가 잔뜩 회사 책상에 벌려놓아 민망한 것을 빼면 늘 흡족한 결과를 만들었다. 작은 카드를 이용한 각 생각의 단편들을 재조합하고 맥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나의 이런 행동들에 확신을 주었다.
지식의 편집을 통해 어떤 장소에서의 관점을 만들고 결국 개개인의 마음을 건드리고 다루면서 문화를 만든다. 문화는 다양한 시선을 가지는, 순간순간이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인 편집 결과물인데 여기 어딘가에 창조(창의)가 있다. 우린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자신이 만드는 행복과 그런 행복의 감정이 생기는 경우를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욕구가 예술을 만나게 하며 오늘을 되짚고 뒤집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쓰게 한다.
“창조적이고 싶다면 무엇보다 이 따분하고 지긋지긋한 삶을 낯설게 해야 한다.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2014년 대한민국은 인문학의 해였다. 테크닉과 요약으로 함축되는 인문학으로 맛을 본 사람도,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전과 예술, 그리고 우리 삶에 녹아 있는 그것들의 존재를 적어도 한 번쯤은 탐색하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일상이 창조를 매개로 행복까지 연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으리라. 2013년 8월, 트위터로 누가 물었다. 2014년엔 무엇이 화두가 될 것인지. 그때 나는 “Self-awareness”라고 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인문과 예술과 창조는 자기인식에서부터 시작되며 편집의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여기서 자기인식이 잘 되지 않고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가 허접하면 결국 우린 키보드를 잡고 검색을 하게 된다. 이렇게 검색엔진을 통해 재편집된 정보들은 마치 내 것인 양 군집을 이루어 표절이 되고 쓰레기가 된다.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실제로 들은 이야기인데 책을 낼 때 주제와 챕터만 정하고 내용은 인터넷 서핑으로 채운 후 글을 편집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팔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습관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도둑질이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행동과 결과를 인지하고 판단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소한 개인의 의사결정도 지식in에게 묻는다. 뭔가 첨단을 달리고 집단지성을 이용하는 것 같지만 행복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에디톨로지’라는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또, 이렇게 길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텐데 너무 길어져 버렸다. 말콤 글레드웰의 글이 가끔 그렇다. 그리고 뜬금없는 농담은 몰입을 박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건 최악의 경험이었는데 강의로 들었다면 정말 재미도 있고 적절한 주위 환기를 했을 텐데. 책과 강의는 편집의 방법이 다르니까.
책을 사서 보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김정운 교수님의 3부작 강의 <오늘, 미래를 만나다>를 본다면 올해를 계획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난 개인적으로 강의를 들었을 때가 장황하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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