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어느 겨울 풍경에서 시작한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교통 체증처럼 지루하며, 하루하루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채. 인생은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 옴짝달싹 못하는 자동차 같다. 그래도 열심히 대본을 외우고 재즈를 반복해 듣는다.
차 안을 뛰쳐나온 미아를 시작으로 도로 위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다시 차 안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다. 뜨거웠던 열정도, 사랑스러운 눈빛도, 간절한 바람까지도. 오로지 시간만 흘렀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내가 결정해” “내가 그렇게 하기로 한 거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이들 두 사람의 주체적 삶을 위한 노력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흔들었다.
리알토 극장에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보기로 한 미아. 하지만 현 남자 친구 그렉과의 선약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식당 테이블에서 지루한 대화 – 내가 아닌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화 – 를 들으며 세바스찬과의 약속에 마음 졸이던 그녀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city of stars>를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얽매여 있는 우리 모습이 보였다. 현실은 늘 부럽고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해 보이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두 시간만에 상황이 정리되어 버리는 영화가 아니다.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찮고 뾰족한 수도 없다. 그래서 미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의자를 밀치고 무릎을 펴며 좁은 복도를 뛰어가기만 하면 되는, 단지 충동에서 비롯된 물리적 행동 정도로 치부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끌려다닐 텐가”라는 물음은 거거서 되살아났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꿈을 위해 노력하던 미아, 마침내 그녀는 스스로 대본을 쓰고 공연을 올린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어쩌면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믿으며 모든 것을 쏟아붓지만 그만큼 상처도 깊다. 지난 6년 여의 모든 노력이 가시로 되살아나 살점 깊숙이 박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 제자리에 섰을 때, 그럼에도 다시 그 자리임을 발견할 때, 우린 이런 느낌을 받는다. 미아는 그랬다.
미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 카페의 사장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무렵 계절은 다시 돌아 겨울. 우연히 미아가 셉스 재즈 카페를 찾고, 세바스찬이 연주할 때, 다시 그 뜨거웠던 지난날이 되살아 날 때, 나는 눈물이 났다.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지금 무엇이든 하려는 열정과 욕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좋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결정이 때론 타협으로 치부될지라도, 매 순간 내리는 최선의 선택의 노력을 위로하고 싶다. 그것이 어떤 위대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뒤돌아 보니 잘못된 결정이었을지라도, 그래도 다시 그런 상황이 된다면 우린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세바스찬이 그의 친구 밴드에 합류하며 정통 재즈를 포기했던 결정이든, 이제는 그만하고 다시 학교로 가겠다고 말했던 미아의 생각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꼭 끌어안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우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물었다.
…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세바스찬이 말했다.
이동진 님의 <책은 밤이다>에 나오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막살고 싶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Keep looking, Don’t settle”이란 말도 생각난다.
이 영화는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영화다. 오늘 밤을 자고 나면 우리는 또 라라랜드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울고 웃으며 상처받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삶은 바로 거기에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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