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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캐리 언니의 퇴사

by 마켓펀치 2019. 9. 26.

2017년 2월 17일, 캐리 앤 소프트 봄맞이 채널 개편 소개 영상을 보다 깜짝 놀랐다. 캐리 언니(강혜진)가 새로운 캐리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한 화면에 2명의 캐리가 등장한 셈. 새로운 캐리 언니는 앞으로 원래 캐리 언니를 대신해 장난감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뭔지 모를 허탈감과 상실감, 배신감마저 드는 이 기분을 뭘까.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이 영상의 싫어요 수는 9,463개, 좋아요 수가 5,598개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캐리 언니라고 한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만드는 캐리 앤 소프트는 2014년 10월 3명이 시작한 회사다. 초기 석 달 매출 17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2016년 기준 약 40여 명의 직원에 매출 51억, 당기순이익 15억 원의 유망 회사로 성장했다. 기업 가치가 아닌 실제 돈을 벌고, 남기는 숫자가 3년 만에 저 정도라니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급성장의 배경엔 ‘캐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캐리 언니(강혜진)를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유튜브를 통해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봤을 때 나 조차도 넋을 놓고 봤던 적이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캐빈, 엘리 등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 장난감을 소개하지만 초기엔 캐리 혼자였다. 그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 톤, 몸짓, 장난감을 다루는 마음과 아이들을 쏙 빠져들게 하는 스토리텔링까지. 사실 그녀가 없었으면 지금의 캐리 앤 소프트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캐리 언니가 새로운 캐리를 즐거운 표정으로 소개하는 이 영상이 유쾌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불쾌를 넘어 급성장하는 창업 기업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 현상을 좀 더 곱씹어 보고 반면교사(Lesson-learned) 해보기로 했다.

 


초기 창업 멤버

초기에 끈끈하던 스타트업도 돈을 벌기 시작하고 직원이 늘어나면서 겪게 되는 초기 창업 멤버의 거취 문제는 책과 현실에서 늘 등장하는 단골 문제다. 캐리도 이런 문제를 피해가지 못했다. 캐리와 함께 등장했던 캐빈(강민석)은 실제 캐리(강혜진)의 오빠인데 캐빈 역시 얼마 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급작스럽게 퇴사를 한 적이 있다. 누가 퇴사를 먼저 원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우월적 지위나 매력을 가지기 시작하며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것이 지속될 때,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긴 더 이상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창업 초기 소규모 그룹일 땐 드러나지 않다가 현금 흐름이 생기고, 사람이 늘어나고,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될 즈음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초기 기업의 창업 멤버를 볼 때 서로가 만났던 기간이나 관계, 신뢰의 정도에 대해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스크 줄이기

위에 언급했듯 캐리 앤 소프트는 2016년 51억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창업 3년 차 기업임을 생각해보면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대표의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매출과 직원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장과 매출,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도 생겼을 것이다. 캐빈, 엘리 등 여러 캐릭터들을 만들고, 업체 제휴와 뮤지컬 기획, 캐릭터 펜시 사업 등으로의 확장은 이런 수익 구조에 대한 다각화 전략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해결하지 못한 고민도 남았을 것이다. 바로 캐리라는 캐릭터.

 

캐리 언니로 회사를 이만큼 키워 냈지만, 회사가 더 크기 위해선 캐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캐리라는 캐릭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는 치명타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영상 노출 횟수 감소 등을 통해 캐리 자체의 영향력을 낮추거나, 다른 캐릭터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2가지 방법 모두 캐리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지만 전자는 전체 파이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후자는 늘어난다. 초기 창업 멤버와의 불화, 캐리 의존도 줄이기 실패(원조 캐리, 캐빈 퇴사)는 리스크 줄이기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당장 현재의 문제를 만들어 버렸다.

제품의 특성

캐리 언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안타깝게도 캐리 언니 자체는 공산품이 아니다. 캐리 앤 소프트가 만드는 제품 즉, 콘텐츠는 말 그대로 창작품이기 때문에 갑자기 “옛날 것 낡았으니 그거 버리고 새 거 해”라고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색의 옷을 입혀둔다고 누구나 캐리 언니가 될 것 같았으면 지금의 캐리 앤 소프트는 없었다. 다른 회사를 모두 제치고 ‘캐통령’이 된 스스로의 핵심 경쟁력을 캐리 앤 소프트는 진정 몰랐던 것일까.

 

가까운 미래에 캐리 언니 강혜진 씨가 개인 채널을 통해 장난감을 소개하거나, 다른 채널에 스카우트되어 나타난다면 어린이들은 그래도 여전히 캐리 앤 소프트 채널을 볼까? 난 아니라고 본다. 기업이 어느 하나에 의존적이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건 정말 중요한 전략이고 핵심 경쟁력이지만 이런 갑작스럽고 일방적 방법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시스템을 돌리는 구조의 요소를 다른 캐릭터가 서서히 영향력을 높여 가면서 캐릭터 스스로 시장 경쟁에 의해 살아 남고, 지지 기반이 튼튼해지며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강제로 “이제부턴 이걸로 보세요.” 이런 방법은 창작 콘텐츠 기업과 그 팬들에게는 최악의 한 수다. 캐리 앤 소프트 말고도 볼 채널은 많다. 아니라고? 루피 토이, 베리의 헬로 토이 한 번 보시라. 이런 채널은 요즘 흔하다. 게다가 더 재미있다.

 

 

 


 

캐리 언니의 환한 얼굴을 한 작별 인사를 보고 유튜브 구독은 해지, 인터넷 바로가기는 삭제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생긴다. 직원도 많아지고 해야 할 일도 수없이 생긴다. 점점 큰돈도 만지게 되고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캐리 앤 소프트의 캐리 언니 사태를 보며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둔 깨달음이 하나 있다. 지금 진짜 ‘나의 핵심 경쟁력은 뭔가’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고 즐겨 읽는 이은세 님의 “초보 창업자들을 위한 조언”이란 블로그를 글 중 아래와 같은 조언이 있다. 캐리 앤 소프트의 ‘프레-모텀(Pre-mortem)’을 누가 묻는다면 이번의 캐리 언니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프레-모텀 (Pre-mortem)”을 해보자.

만약 필자가 만난 창업자들이 우리 독자들 가운데 있다면 그중 몇몇 분들은 “다 좋은데요, 그래도 만약 지금 생각하시는 게 잘 안되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라는 질문을 필자에게서 들었던 것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누군가가 사망한 후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실시하는 검시(檢屍)를 우리는 사후(事後, After)를 의미하는 ‘Post’를 죽음을 의미하는 ‘Mortem’과 함께 사용해 “Post-mortem”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Post가 사전(事前)을 의미하는 ‘Pre’로 치환된 “Pre-mortem”은 실제 사망 이전에 사망을 가정하고 과연 무엇이 죽음을 가져오게 했는가를 따져보는 일을 말하게 될 것이다 (사전 등을 찾아보니 사전 부검 등의 단어로 번역되는 것 같지만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본문에서는 그냥 Pre-mortem이라는 단어로 사용하기로 한다)

… 중략…

스타트업들에게 그런 Pre-mortem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하기 전에, 혹은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몇 분의 창업자에게 했던 질문인 “그래도 잘 안되었다면 왜일까?”를 자문해 보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은세 님의 블로그 글 중 발췌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2월 20일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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