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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키치 차이나 (Kitsch China)

by 마켓펀치 2019. 9. 26.

중국에서 혁신을 배워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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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저우(杭州)에 출장 간 금융회사 부장 A 씨는 호텔 주변 노점상에서 파는 중국식 찐빵이 맛있어 보여 사 먹으려다가 진땀을 뺐다. 찐빵 한 개와 두유를 3위안(500원)에 팔기에 현금을 냈더니 찐빵 장수가 현금을 안 받는다며 매대에 걸어둔 격자무늬의 QR 코드를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휴대전화로 QR 코드를 찍으면 결제가 되는 서비스 ‘위챗 페이’로 돈을 내라는 뜻이었다. 그런 게 없다고 하자 찐빵 장수는 “음식 파는 데 와서 더럽게 현금을 내면 어떡하느냐. 외국인이라니 이번에만 봐주겠다”고 핀잔을 줬다.

최근 중국 핀테크와 국내 규제에 대한 문제를 다룬 한 기사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음식 파는 데 와서 더럽게 현금을 내면 어떡하느냐.”라는 문장이 요즘 중국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과 시선을 한번에 대변하는 것 같아 한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혁신적 중국

최근 IT산업을 필두로 중국이 혁신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하는 듯한 모습이 연일 뉴스에 등장한다. 알리바바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의 등장과 창업주의 생각도 여러모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기사의 내용과 같이 요즘 중국은 위챗 페이, 알리페이가 어디 가나 보인다. 대형마트, 음식점, 하다못해 한국 기업인 뚜레쥬르의 매장에서도 알리페이로 결제하면 혜택을 준다는 종업원들의 프로모션 멘트를 지겹도록 들을 수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인형 뽑기 가게의 동전 교환기도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위챗 페이로 결제하면 지폐를 넣지 않고도 동전이 우르르 쏟아진다.

중국 식당에 비치된 모바일 페이용 QR코드(좌), 위챗 QR코드를 찍기만 해도 동전 교환을 할 수 있는 인형뽑기 가게(우)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우리가 함께 짚어 보고 고민했으면 하는 문제가 있다.

 


현상의 이면(裏面)

2006년, 처음으로 중국 심천에서 탄 택시 안에서 구겨지고 살짝 찢어진 지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300위엔의 위폐를 기사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택시를 내리고 숙소에 도착해서야 내가 가지고 있는 100위엔짜리 지폐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현지 중국인들은 지폐를 빛에 비춰보고, 구겨서 소리를 듣고, 만져서 감촉을 느끼는 등 여러 방법으로 손님이 주는 돈을 검증했다. 2017년의 중국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위폐에 대한 의심이 줄었고 가게마다 위폐 감별을 기계를 이용해 자동으로 한다는 점이 좀 달랐다.

 

6~7년 전, 중국에 진출한 대형마트들이 높은 상품 로스율(내부 직원 또는 손님에 의해 분실되는 상품 비율)에도 불구하고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 상당 부분 손해를 감소하고도 점포 활성화와 매장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해외여행에 불편함 없는 요즘이지만, 2017년의 중국은 여전히 그렇지 않다. Master, VISA 마크가 찍힌 신용카드를 들고 간다 해도 대부분의 가게에서 결제가 안 되는 황당한 경험을 할 것이다. 현금을 챙기든, 모바일 페이를 쓰든 해야 귀찮은 일을 덜 수 있다. 영수증 받는 일도 kai fa piao(영수증 끊어 주세요) 같은 말로 한 번에 받긴 힘들다. 식당 중에 현금, 신용카드 모두 안되고 위챗 페이만 되는 식당도 있다. 뭔가 스마트해 보이지만 위챗 페이를 안 쓰는 사람은 결제를 할 수 없으니 식사를 못하고 도로 나가야 한다. 위챗 페이 계정이 있다 해도 지출 증빙이 필요한 회사원들은 영수증 발급이 어려우니 여러 불편한 일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현상(現狀)과 상황(狀況)

굳이 중국의 안 좋은 경험을 예로 든 것은 중국이 혁신과 개방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요즘의 기사를 보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일종의 키치(Kitsch)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중국이 연일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규제를 없애고 비상하는 사이, 우리는 관료주의와 규제에 싸인채 기득권이 점령한 레거시(Legacy)나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 단순히 ‘예’라고 대답하기 전에 현상(現狀)과 상황(狀況)을 좀 나눠보고 싶었다.

 

중국에서 위챗 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가 널리 쓰이며 핀테크 정책이 유연하게 적용되고 있어 이들 회사가 국내외로 활발히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현상‘이다.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신용카드과 같은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중국에서 IT기술의 발달과 관련 회사의 성장, 내수 경제 보호를 위해 폐쇄적이고 유연하게 적용되는 정책과 규제가 시기적절하게 만나 지금의 알리 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가 크게 활성화된 것은 – 그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 ‘상황‘이다. 

 

그러니 기본적 신뢰 관계에서 출발하는 현금과 신용카드보다 위챗 페이를 선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구멍가게에서도 위챗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잘 살펴보면 현상을 왜곡한다. 구멍가게에서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갖추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정부 주도 계획 경제 환경도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워주는 정책은 혜택을 보는 기업 입장에서 혁신이지만, 나머지 기업에겐 규제다. 중국의 정책과 규제가 개방적이며 선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과거 관련 산업이 우리만큼 발전한 적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으레 다른 기타 개발도상국들이 겪었던 선진국들의 ‘사디리 걷어차기’도 거대한 인구 규모와 내수를 가진 중국에겐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중국 기업이 성장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유연한 정책은 다수에게 적용되는 ‘공정’의 가치를 희생한 대가다. ‘상황’을 배제하고 ‘현상’만 보는 것은 섣불리 전장을 옮기는 장수와 다를 바 없다.

마치며

우리나라의 혁신과 규제 해소의 노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어떤 좁은 범위의 목적 달성을 위한 프레임 짜기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 시선을 올바르고 냉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쌓아온 레거시를 부채가 아니라 현재의 일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의 올바른 출발점에 설 수 있다. 혁신은 한번에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찾고 개선의 노력을 지속하여 누적하는데 있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3월 3일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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