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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만권 독서법

by rhodia 2019. 9. 26.

정보 과잉 시대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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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제시하는 독서법은 파격적이며 무례하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약간의 불쾌함을 느꼈음에도 굳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쌌기 때문이다. 4,200원의 가치는 할 것 같았다. 

 

다독의 함정은 책의 내용보다 숫자에 집중하게 만들고, 나의 책 읽기를 흐트려뜨렸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해오던 “올해 몇 권의 책을 읽었나”하는 숫자 세기를 작년부터 그만두었다. 대신 책을 선택할 때 좀 더 신중하도록 노력했다. 나에게 [입력]되는 책의 선택 기준을 높여 저품질의 책을 걸러낸 후, 정독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문장을 씹어 읽을 수 있어 좋았지만 내가 고민 고민 끝에 선택한, 그러니까 내게 [입력]되는 책이 늘 고품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억지로 읽은 적도,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읽고 싶은 책은 많았고 읽지 못한 책은 쌓여만 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정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과거 ‘숫자 세기’에 집중했던 폐해와 ‘책을 쓴 작가에게 그러면 안된다’는 일종의 죄스러움이 합쳐진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독서 습관을 돌아봤다. 놀랍게도 이미 나는 모든 책을 정독하지 않고 있었다. <아침 5시의 기적>이라는 책은 10분 만에 책 마지막 장을 봤고,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라는 책은 평소 책 읽는 속도의 3~4배 속도로 읽었다. 모두 전자책으로 선택했으며 고속으로 읽었다. 정독에 대한 나의 강박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독서란 수천의 문장 사이에서 나를 성장시킬 단 한 문장을 찾는 과정이다.


이 책은 단지 무조건 빨리 읽고 기억에 남는 몇 줄만 네 것으로 만들어 보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읽고 내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방법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책 읽기 방법을 크게 3단계로 나눠본다면 ‘고르고 / 읽고 / 마무리’ 하는 과정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고르기

모든 책을 빠르게 읽지 않는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종류가 따로 있다. 영화를 빠르게 돌려 볼 수 없듯이 이야기의 흐름이 있는 소설류의 책은 빠르게 읽을 수 없다. 빠르게 읽기로 했지만 읽다 보니 나에게 꼭 맞는 훌륭한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책은 몇 장만 넘겨봐도 감이 온다. 이런 책들은 좀 더 시간을 투자해 읽는다. 고전 역시 정독의 대상이다. 이외의 나머지 책들은 일단 모두 빠르게 읽기의 대상이 된다.

 

당연히 읽을 필요가 없는 (적어도 나에게는) 저품질의 책을 사전에 골라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저품질의 책을 골라내는 방법으로 차례를 꼽는다. 시간을 들여 차례를 자세히 보고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책을 과감히 버린다. 망설여진다면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읽을 책을 어떻게 입수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는 도서관 / 중고 서점 / 오프라인 서점을 꼽았다. 각 장소에 따른 입수 방법(대여, 구매 등)이 다르고 큐레이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 일주일에 읽을 책을 하루 한 권씩 읽을 스케줄로 그 전주에 정해 본다. 이때 한두 권 정도 썩 내키지 않는 책을 넣는 것이 포인트. 나와 성향이 맞는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도 눈여 볼 필요가 있다. 

읽기

그냥 읽는 게 아니다. 다 방법이 있다.

 

책의 시작 부분에 있는 차례는 정독해 읽는다. 왜 내가 이 책을 읽으려는 것인지,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반드시 ‘시간을 들여’ 읽고 생각해본다. 차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턱대로 책장을 넘기지 말자. 그러면 빠르게 읽을 때 책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또 써야 한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불필요한 문단들을 걸러내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우리가 어떤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반드시 가설이 존재합니다. 가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니, ‘이 책의 내용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그러니 읽을 가치가 있다’라고 하는 일종의 기대라고 해둡시다. 이런 식으로 무엇인가 가늠해보는 행위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제목, 소제목을 보고 하려는 말의 주제를 잡고 생각하며 읽는다. 역시 ‘생각’하며 읽기 위한 방법이다. 중제목, 소제목을 보고 생각하며 읽으면 내게 정말 필요한 한 줄만 딱 남거나, 한 줄도 남지 않는 챕터를 골라낼 수 있다.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내는 구체적인 요령

1단계: 머리말과 차례를 잘 읽는다.
2단계: 처음과 마지막 다섯 줄만 읽는다.
3단계: 키워드를 정해 읽는다.
4단계: 두 가지 이상의 독서 리듬으로 읽는다.

독서 자체가 어려운 분이 있다면 거창하게 긴 시간을 한 번에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당장 시작하지 말자. 10분이라도 짧은 시간 밀도 있게 읽고, 늘 그 시간에 읽는 습관을 만들어 가자.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와 템포를 조절하면 도움이 된다. 규칙적으로 가볍게. 이게 중요하다.

마무리

내보내야 들어온다.

 

끝내주게 재미있게 본 영화나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던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왜 그랬는지 기억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정리해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내보냄을 통해 비워야 한다. 시간에 의해 비워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털터리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들 수 있다. 너무 부담스럽고 거창하다면 ‘단 한 줄’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시작하면 살이 저절로 붙고, 생각도 불어난다. 이 책의 저자 이나미 아쓰시는 이런 방법을 ‘한 줄 에센스’로 표현한다. 글쓰기의 부담스러움을 없애는 좋은 방법으로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을 ‘인용’하여 삽입하라고 말한다.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잔뜩 꼽혀있는 책장을 3개월마다 정리하는 저자의 습관에 대해 소개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나는 서로 연관 없는 책들이 한 책장에 꽂혀 만들어 내는 충돌과 인사이트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비워내기 경험은 책장 관리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는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저장하여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밑줄을 그어도 책의 가치는 바깥 세계로 나올 수 없습니다. 책 속에 잠든 그대로입니다. 책을 덮고 책장에 넣은 순간 그 독서체험은 없었던 것이 되고 맙니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나는 미팅이 생기면 2가지를 생각한다. 무엇을 얘기할지, 방을 나올 때 무엇을 얻어 나올지. 모두 미팅 전에 미리 하는 생각이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왜 읽으려는지, 책을 덮을 때 무엇을 얻어올 건지 미리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게 빠르게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이다.  

 

아직도 이 1만권 독서법에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책으로 먼저 테스트해보자. 확신과 자신감, 둘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면서 약 40분 만에 다 읽고, 이 글을 썼다. 4,200원에 읽었지만 42,000원의 가치를 내게 준 책.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2월 25일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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