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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털털함의 강박

by 마켓펀치 2019. 9. 26.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1월 30일 쓰였습니다

 

바야흐로 털털한 연예인의 전성시대다. 잘 먹고 허허 웃으며 초긍정 자세를 취해야만 사랑받을 최소한의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TV에는 털털한 성격의 연예인들이 자주 보인다. 좀 뜬다 하는 연예인들은 입이 터질 듯 먹방을 찍고, 이상한 얼굴 표정의 사진이 돌고, 불쾌할법한 상황에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수 억 명의 서로 다른 취향과 선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중이 되고 연예인은 그런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산다. 털털함은 그런 각양의 시선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몇 안 되는 희귀 아이템이다. 그래서 그들이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보기에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라고 정의되는 ‘털털’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요즘 흔한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런 털털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인다.

 

털털한 성격이 모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라면 대중의 사랑을 더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들의 성격이 강요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들의 털털함을 사랑하는 건 대중의 시선을 받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자연스러움, 그러니까 연예인 본인이 가진 스스로의 가치관과 행동이, 대중에 의해 목숨이 좌우되는 직업의 세계임에도, 그대로 굴복하지 않는 데 있다. 

 

털털함이 본래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 사랑받는 것이라면, ‘털털하지 않음’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싫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털털함이 더 이상 강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털털’의 사전적 의미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털털’을 사전적 의미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을 사랑하고, 그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을 사랑하고, 그 행동의 당당함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날 것의 예술과 창작의 아름다움이 제멋대로 절단되지 않고 날카롭게 원석으로 빛나며 주변을 긁어낼 때, 문화는 비로소 살아 숨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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