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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내가 대기업을 나온 이유

by rhodia 2019. 9. 25.

직면

 

흔들린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흔들린다.
나도 너도 할 것 없이.

 

오늘 퇴근길은 유난히 복작복작하다.
서로 피해 빠져나가려 노력할수록 엉키고 설킨다.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섰다.
그리고 그 혼란스런 움직임들을 바라본다.
개별적 움직임은 돌고 있는 팽이를 바라보듯 하나의 배경이 되고

 

비로소 길이 보인다.

 

2013.09 퇴근길 지하철 플렛폼에 서서 쓴 메모 중


첫 직장

나는 처음 직장생활을 직원 수 150명 정도의 중소기업에서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궁금하고 또 신나는 일들. 그리고 어떤 기여하고 있다는 즐거움에 금요일이면 다가오는 주말이 어찌나 아쉬웠는지. 사람들이 퇴근하기 시작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즐겁고 평온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덜 불편하고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을지 고치고 개선해야 하는 것들이 떠올라 새벽에 일어나 메모를 했던 기억이 참 많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 ) 

 

하지만, 늘 더 나은 시스템, 더 나은 보상,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욕구와 생각들이 잠재해 있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대기업으로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고 한 직원이 1만명이 넘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경험했던 시스템과 프로세스 등은 나에게 큰 영감과 도움을 주었는데(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직도 크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고통 만큼이나 꽤 큰 즐거움이 있었다. 아래는 내 퇴직 인사메일의 일부다. 그 순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듯 하여 붙여본다.

이제 31살, 더 많이 넘어지고 부딪히며 ‘일’ 이라는 삶의 행위를 통해 무엇이 더 즐겁고 더 옮고 더 행복한지를 찾아보려 합니다. 작지만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기로 하니 아쉬움이 아닌 미련이 남네요. 미처 내 일이 아닐 땐 몰랐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미련에 대해 부끄러워하니 결혼 후 보라보라에 과일 따먹고 사는 아는 동생이 이런 이야길 합니다.

“뭐가 부끄러.. 당연히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 같아. 가진 걸 내려놓기가 얼마나 힘들어. 자신에게 확실한 답을 주어야 하고 주변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들만 생각해도 대단해. 더 좋은 날들 누렸음 좋겠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스스로 더 많이 성숙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행복해 보이는 삶과 행복한 삶.

이직을 결심한 계기

아래는 퇴직하고나서 유독 많이 들었던 질문인데 ‘대기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상대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나왔어?” “무슨일있어?”

엘리베이터에서 가볍게 이야기 할 만큼 쉬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말을 아꼈지만 사실 이런 질문들과 상관없이, 나는 수개월 전 퇴직을 결심하며 ‘왜?’라는 것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었다. 부끄럽게도 이제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고 떠날 이유가 무언가? 그런 이유들을 만족시키는 최상의 대안은 있는가? 생각을 하다보니 진짜 문제는 이런 얄팍한 생각을 내가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조르바의 야유가 계속 생각을 방해했지만 그 ‘왜?’에 대해서 글로 정리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래는 그런 이유에 대한 나열이다.


직업소명의식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도 나에게 참 많은 의미를 가진다. 직업소명의식과 신념. 내가 일을 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첫 직장생활부터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에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루를 보내면서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날은 점심에 먹은 밥이 생각나더라. 내가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과 결과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에 디딤돌이 되고, 그것이 그 크기에 상관없이 세상에 기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스스로 내 존재를 확정짓는 의식같은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작곡가도, 가수도 각자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노래를 만들고 불렀지만 나는 그들로 인해 치유받고 용기를 얻는다. 내가 하는 일이 월급으로 질척거리지 않으며, 느슨하고 의도하지 않은 선순환이 되면 좋겠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몇 가지를 더 적어본다. 결국 이런 것들이 나를 더 이상 앞으로 움직일 수 없게 내 의지를 마비시켰다.

가족

나에게 가족은 없었다. 아니 없어졌다.

 

의도적으로 배제하진 않았지만 늘 그곳에 있는 그런 존재였고 미래, 연봉, 돈이 더 성취할만한 목표였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리라 생각했다. 매년 설정하는 Objective & PDP 에 Work & Family Balance가 늘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단한 일을 해내기 위해선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은(공짜가 없는 세상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처자식의 목을 배고 전장으로 떠난 현대 계백장군의 삶엔 아버지는 없고 돈만 남았다. 그리고 50세가 넘어 별을 달고 퇴직한 삶엔 가족은 없고 왕년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변하지 않는 명제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 많이 늦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가족은 삶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진짜 하고 싶은 것

나는 명확한 삶, 꿈, 목표. 단 한치도 흔들리지 않은 마음, 이런 것들을 일찍이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떠다닌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확신을 가지고 싶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런 불확실성은 늘 초초함으로 전이되었고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세어보니 올해로 8년째다. 최근 ‘멍 때리는 시간’을 좀 가지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키워드를 짚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왜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이 중요한지도 실감했다.

기업, 문화, 광고, 마케팅, 경영, 브랜드, 사람, 책, 글쓰기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이룰 도구가 되어 줄 IT.

이것들은 요즘 내가 즐거움과 열정을 가지게 만드는 단어들이다. 이런 재료들로 사람들과 사회의 가치를 엮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끝이 없을 것 같은  –  나는 지금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고 가정도 있고 진로를 바꾸는 위험성에 대해 누구나 언급하는 그런 시점에 – 매일 매일의 노력들이 아무런 삶의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과 함께 불안으로 떨고 있을 때 날 수렁에서 구해준 말과 그림이 있었다.

 

 

비윤리적 경영과 가치관의 혼란

일하는 내내 나는 가치관의 혼란과 함께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해 시달렸다. 회사에서 대내외 적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는 상생, 협력, 존중, 고객가치, 사회공헌. 그러나 겉으로는 존칭하며 협력업체를 부르면 튀어와야 하는 마당의 강아지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거부하긴 어려웠다.(누구든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런 기업문화에서 살아가는 나 역시 생각의 근저가 그렇게 대체되고 있다는 걸 무심코 깨달은 건 아주 한참 후였다. 정말 위험했다. 흔히 말하는 ‘갑질’이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상대의 마음에 움푹 패인 상처를 남기는 범죄였음을 어찌몰랐을까?

 

고객에게 주는 포인트를 슬쩍 깍아 기부하면서 마치 회사가 사회공헌을 하는 것 처럼하는 눈속임은 경영전략으로 보기엔 너무 치졸했다. ‘상생’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띄었다. 진짜 상생은 사실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남을 위하는 척하면서 전점 주말 강제휴무 당하기 전에 매출이 적은 날을 ‘상생’과 묶어서 시행하고, ‘농민의 눈물’로 그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인센티브가 줄어 걱정 아닌가?

 

직원만족도 조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충격과 고민에 빠졌다. 직원들은 이야기는 그렇지 않은데 그룹 CEO 에게 보고될 때는 사상 전례없는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다간 100%가 아니라 그 이상의 최고수치가 필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통계의 왜곡은 다음 사람이 무엇을 하더라도 그 이하의 결과를 만들 수 밖에 없다.

 

다음 경영자는 둘 중 하나를 해야한다. 잘못된 통계치를 올바르게 고치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통계의 늪에 빠져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과 임기를 유지할 것인지. 전자가 얼마나 어렵고 큰 결단을 요구하는지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진정성 없고 늘 수 십 번은 계산하고 곱씹어봐야 당신이 손해라는 걸 알게하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큰 괴로움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발견되는 비윤리적 모순은 구성원의 자부심에 큰 상처가 된다.

기업문화와 주변환경

과거 공장 노동자들을 대하듯 정말 잠깐의 시간도 멍~하게 있을 틈 없이 쪼이고 몰아부치고 뭔가 몸으로 미친듯이 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 분위기에서 창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동의 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사람이 반복하는데 있다. 그것도, 아주 호들갑스럽게.

 

이런 부분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구성원들이 본래의 책임과 직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과 자동화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사람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방향에 대한 리더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러는 과정에 반면교사도 많은 배움이 되었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뭔가 하는데 세상에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고 느끼는 건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일부러 주말에 메일을 보내고, 사람은 회사에 없는데 퇴근 후 발송되는 예약메일로 아직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다. 이런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와 권력주변의 사내정치는 기업의 존재이유가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기업문화와 관련된 교육과정도 있었지만 그들도 그저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절 했던 메모를 하나 붙여본다.

초초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끊임없이 무엇인가 해야한다. 책을 읽던지 인터넷을 글을 보던지.. 아니면 몸으로 체득하는 무언가를 하던지.. 이런 식으로 계속 뭔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정신적으로 중요한 ‘멍~’하는 시간도 없어지고 열심히 받아들였던 그것들도 사실 상 기억되지 못하고 증발해 버린다.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채워는 넣지만 결국 ‘내 생각’은 생기지 않고 늘 스쳐지나가는 껍데기 지식만 늘어나니 이 것을 경계해야 한다

개인의 성장

위 <기업문화와 주변환경>과 같은 맥락이다. 회사게 빠르게 성장했던 것에 비해 내실 다지기가 잘 되지 않다보니 비대해져가는 레거시에 비해 체계적인 정리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신제품과 혁신으로 치고나가는 쪽이 있으면 그것을 받아 지속성을 가진 사업으로 돌리는 쪽도 있어야 함을 또 한 번 느낀다. 이렇게 그저 빨리만 하다가 담당직원이 퇴사를 할 경우 그대로 잊혀지게 되니 근육이 아닌 비계가 된다. (어떻게든 ‘빨리했다’는 것은 그 순간의 성과가 되지만 시간은 이런 것들을 잊혀지게 하고 마치 발목에 무게추를 하나씩 더해서 뛰는 결과를 만든다.)

 

비즈니스를 하려고 사람을 뽑고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시스템을 돌보기 위해 그 사람들을 쓴다. 이런 현상은 컴퓨터가 할 일을 사람이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노가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갔고 개인의 경쟁력 또한 상실되고 있었다.

 

덧붙여 나를 채우지 못하고 온전히 소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번아웃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읽은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의 어느 챕터가 생각난다. 아래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5단계다.

‘번아웃 — 심리적 에너지의 소진’

1단계 — 삶의 에너지가 벌겋게 타오른다.
2단계 — 굵은 참나무 장작이 지속적으로 타고 있다.
3단계 — 가늘어진 불길이 바람에 흔들린다.
4단계 — 바람이 세게 불어야만 불꽃이 일어난다.
5단계 — 불은 꺼지고 연기조차 가늘어진다.

또, ‘왜 능력 있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멍청해지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피터의 원리>를 살펴보면 점점 더 강도를 올릴 수 밖에 없는 — 그래서 가끔은 더 악랄해지는 — 흔한 광경을 생생히 목격하게 된다.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피터의 원리’

1. 유능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일이 몰린다.
2. 승진을 거듭하며 보다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3. 일정 수준이 지나면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부여된다.
4.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신의 직책에 맞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5. 이미 시간은 늦었다.
6. 주어진 과제의 도전은 너무 벅차다.
7. 자신감을 상실하고 두려움에 빠진다.
8. 유능하다는 주위의 평가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9.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그렇듯 한 칼로 끝나버린다.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되고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었고, 인생은 숨을 한 번 내쉬는 동안에도 수 만 가지의 변수가 있어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으며, 영원회귀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존재와 삶에 대해, 그리고 커지는 몸 만큼이나 변하는 가치관을 수시로 계속 때려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아직도 어느 것 하나 확실해진건 없다. 단지 불안과 초초가 없어졌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몇 개의 단어를 골라낼 수 있게 된 것이 전과 다를 뿐이다. 

아, 하나더!

 

충분히 행복한 삶이 곁에 있고, 열정을 바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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