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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가 좋아했던 정원

by 마켓펀치 2019. 9. 25.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샛길로 빠지면 우악스럽게 구겨진 듯한 아스팔트 길이 하나 나온다. 이런데 도대체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게 되는데, 색도 칠해지지 않은 방지턱 때문에 서너 번 급 브레이크를 밟고 나면 그 길을 따라온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보라색 집이 하나 보인다.

 

이 보라색 집 앞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내가 이 정원이 특별하다고 믿게 하는 광경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머리 위로 KTX가 다니는 철도가 있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대단히 압도적이다. 그 거대함 앞에 잠시 자연과 인간, 숙연함, 위대함, 잿빛, 파괴, 재앙처럼 잘 서로가 어울리지 못하는 단어들이 내 감정이 되기 위해 애쓴다. 구도 때문이었을까? 다리를 다 건너서 본 그 콘크리트 구조물은 여전히 압도적이어서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꺼림칙한 중압감 이외에 남은 감정은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쓸쓸함만 보였다. 반면 정원에서 나는 풀냄새는 그것과 대비를 이루면서 뭔가 묘한 설렘을 준다.

 

이런 초입의 감정선은 거대하지만 초라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작지만 위대한 자연에 우리의 현실과 이상을 대입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창조해낸다. 이런 비이성적 쾌감이 내가 이 정원을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았던 이 정원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멀리 서봐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덕분에 오래전 내 아들이 첫걸음마를 때었던 그 잔디는 흔적도 없어졌지만.

 

뭔가 고급인 것처럼 느껴졌던 그 건물에서 시작하는 길을 찾느라 잠시 두리번 거렸는데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의 ‘탐험’에 대해 생각을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자연과 서로의 생각을 소비하기보단 꾸며놓은 아름다움에서 감동을 받는데 익숙해졌다. 마치 예능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다. 이 ‘미션’은 능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동적이다. 이 새 건물의 식물원은 많은 정성을 들인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걸으며 무심하게 사진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자연과 자연스러움에선 일상의 말과 몸이 스스로 깨우쳤던 것들도 이젠 강압적 규칙이 되어 나타났다.

 

이렇게 갇힌 아름다움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이것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인식될 때 비극은 시작된다. 돌들은 그 생명력을 잃었고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발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있었다. 물은 의도적으로 쌓아 올린 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흘렀다.

 

이건 시냇가도 어항도 아니다. 잿빛 시멘트와 생명을 잃은 시체들의 무표정에서 오는 좌절감이다.

 

여기가 식물 박물관임에도 하나도 기억나거나 눈에 들어오는 식물이 없었다는 점도 신기하다. 빵집과 화장실은 기억이 난다.

본래 식물원 같은 곳은 습하고 탁한 공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것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이 곳의 이 닫힌 공기는 방독면의 쓴 것처럼 답답했다. 그래서 인공호흡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숨 막힘으로 고통스러웠고 다시 이곳을 올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희미하게 했던 것 같다.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이 멋진 새 건물이 과연 초입의 그 정원을 가꿨던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 하는 것과 “의도한 것은 아닐까” 했던 것.

 

새건물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식품. 같은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해가 지고 레이저빔이 정신없이 쏘아지는 벽에 다시 한번 짜증이 났다. 아까 요 옆의 개울에서 시냇물을 뜨려고 몸을 잔뜩 구부리고 있었던 개구쟁이 녀석의 표정이 괜히 떠오른다. 같은 물소리지만 식물원에서 들었던 것은 돌과 풀과 나무들의 곡소리였다.

 

정원이 있었고 들러리처럼 레스토랑이 있었을 때 우린 또 오고 싶었다. 이 곳의 이익은 레스토랑이 만들었지만 본질은 정원에 있었다. 아마추어 브랜드 마케팅의 관점에서도 주인의 그런 생각이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2년 뒤에 다시 온 곳에는 카페가 있었고 식물과 돌들이 들러리를 섰다. 나오는 길에 다시 그 KTX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 유니스의 정원을 다녀와서

 

이 글은 2014년 6월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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