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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머리 깎던 저녁

by 마켓펀치 2019.09.26

차가움과 따뜻함

 


 

잠바를 움켜쥐고 깃을 세운다.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먼저 들어와 내 빈자릴 차지한다.

서글프다.

어제 비가 내린 건지 낙엽들이 축축이 젖어 바닥에 얼어붙었다. 인도 옆 꽃이 피던 공간엔 얼마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았다. 추위가 온몸을 덮었지만 아직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창문 밖에서 머리를 자르며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명이 온통 형광등이어서 그런지 “다음에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보 같단 생각을 했다. 문에 달린 손잡이는 살에 붙여버릴 듯 차가워 들어갈지 말지 얼른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너 번 문이 왔다갔다한 후 완전히 멈췄을 때 정말 조용하고 따뜻한 공기가 그동안의 여러 생각들을 지운다. 잘리는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몰랐을 가위질 소리와 바리깡 기계음, TV의 감성은 아닌데 하고 돌아본 라디오의 노래는 잘 꾸며진 각본의 영화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어떤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열리는 문에서 나는 차 소리를 타고 재빨리 들어오는 찬바람. 의자에 앉아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 눈을 감았는데 뒷주머니에 있던 4,500원이 배겼다.

노동의 가치.
일의 의미.

내가 지불하는 돈이 정당한가에 대한 생각. 물물교환을 했다고 하던 시절을 상상해본다. 지금은 돈은 지극히 추상화되어 숫자만 남았다. 뭔가 이상해 진건 여기서부터가 아니었나 하는 어리숙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머리를 감고 지금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한번 더 머쓱하게 약간 큰소리로 내는 “고맙습니다” 뿐. 이 조차도 목구멍이 좁아져 흐지부지 돼버렸다. 만 원을 내밀었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절반을 뚝 때어 다시 주는데, 내가 지불한 돈이 충분히 정당했던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외투를 입고 문을 다시 열었다.
아까 그 찬바람이 또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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