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는 것과 움직이는 것
참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부는 맞바람도 그리 불쾌하지 않다. 밤새 내린 눈으로 소나무 가지마다 쌓였던 눈 뭉치가 바람에 밀려 툭툭 떨어진다. 소복이 덮여 숨 쉬고 있을 봄 새싹 생각도 난다. 석양으로 착각할 만큼 낭만적이 었던 빛은, 늘 그때쯤이면 얼어붙은 한강 표면을 튕겨져 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하얀 눈이 그 자릴 대신한다.
폭설이 내린 서울은 그 경계가 더 뚜렷해 세상을 완전히 양분해버렸다. 달리는 전철과 흐르는 물,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사람들. 문득 움직이는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차가운 눈에 눌려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건 움직이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오늘, 생각지 않은 폭설이 그대 마음에도 내렸다. 그대로 얼어붙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움직이는 것이다. 변함이 주는 왜곡된 이미지에 굴복하지 않고 죽은 것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어쩌면 죽은 것인지 모른다.
변하지 않는다는 맹세는 그래서 거짓이다.
사랑은 눈을 감고 보는 것이다.
어디가 뾰족한지 어디가 날카로운지, 어디에 움푹한 상처가 고여있는지 만져 아는 것이다. 맹세는 말이고, 눈을 감고 보는 것은 행동이다. 그러므로 진정 사랑은 당신에 맞춰 변해갈 수밖에 없다.
하얀 눈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당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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