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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눈물샘

by 마켓펀치 2019.09.26

“새 울음소리가 들려”
“새는 눈물을 안 흘려. 그러니까 짖는 거지”

이런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좀 우습기도 하고, 새가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하는 괜한 궁금증도 일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지는 감정, 그러니까 울음 안에서 발산되는 슬픔과 기쁨을 대표로 하는 아픔, 그리움, 미안함, 행복함, 감격 따위의 수많은 감정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걸까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울지 않는 것이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쩌면 매일 우는 새를 곁에 두고도 눈물샘이 없다 생각했던 건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몇 개월 전 아는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조금 늦은 때 결혼한 이 부부의 결혼식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성숙해진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좋아 죽을 것 같은 젊은 연인의 결혼식과는 또 다른 축복과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썩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한 살배기 아이를 두고 엄마가 돌연 잠적해 버렸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은 알 수 없으나 달리 해석할 여지도 많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가다듬고 사정을 헤아려 보는 것 정도가 제삼자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엄마가 쓴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아이를 원래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좋아하게 됐으며, 앞으로 다가올 첫 생일에 무얼 해주어야 할까 설렌다’는 내용이었다. 가히 충격이었다.

 

이 글은 현재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독자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의 생각과 내용이 거짓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을 뱉는 건 수 초면 되고, 글을 쓰는 건 수 시간이면 가능하다. 행동은 수년에 걸친다. 하지만 익명의 대중에게 보이는 결과는 거의 같다. 아이들이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것과 수 천 번의 목욕을 시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몸을 닦고 열을 내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여기엔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행동은 생각보다 비싸다. 언행불일치의 글을 읽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삶이 빠져 있고 말이 그 자릴 채우기 때문이다.

 

앞서 새 이야기를 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감정을 알아챌 수 없다는 것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인식의 부재는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랑과 이해 모두 생각만으로 할 순 없다. 매일 울고 있는 새를 옆에 두고도 눈물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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