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40 긴 여름날의 끝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지났다. 찬바람이 불고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그랬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연꽃단지에서 만난 가을 연잎은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처음엔 쭉쭉 뻗다가 기세 좋게 올라선 연대는 축 늘어진 연잎을 겨우 떠받치고 밑에서 다시 얽히고설켰다. 아무도 이 난감한 상황을 정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한 해를 정리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남아있지도 않다. 반대편에선 연근 수확이 한창이다. 유일하게 생기가 돌며 분주하다. 누구라도 치열했던 흔적 뒤엔 연근과 같이 스스로의 결실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니 섣불리 누구를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위로하지 말자. 다만 스스로의 일 년에서 몇 개의 단어.. 2019. 9. 26. 사십이 되기 전 부끄러운 고백 _ 오월 축제의 군중 속에서 함께 동화되지 못하고 스스로가 외딴섬처럼 느껴질 때. 아이들이 태어나고 학부모가 되기 시작하던 때. 다들 뭘 먹고사나 싶은, 막막함이 가끔 가슴 한 구석을 턱 막을 때. 면접시험 때문일까, 몸이 먼저 반응하는 단점도 장점으로 포장하기 스킬이 몸에 베여 온전한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나기 두려울 때. 나는 어떤 남편일까, 정답이 있지만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나를 자주 발견할 때.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가끔 상처받을 때. 정말 드물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있지만 큰일 난 줄 알까 봐 전화하지 못할 때. “거봐”라는 지레짐작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울 때. 돌아가긴 너무 멀고, 달려가긴 불안할 때.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른답게 행동해야 할 때. 내가 제.. 2019. 9. 26. 무심했던 지난 날의 반성 산다는 건 때론 너무 평범해서 끝없이 하찮다가도, 지난한 세월을 무던히 견뎠던 하루의 위대함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번번히 투덜거리며 지났던 그 길 위로 안간힘을 쓰며 솟아 오른 풀꽃 무리를 우연히 보았을 때, 그 죄책감과 미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이곳으로 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겨진 글이며 2017년 5월 20일 쓰였습니다 2019. 9. 26. 여행, 새로운 발견 예행 연습이 없는 인간의 삶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기회 _ 에메랄드 빛 바다 위에 펼친 지평선이 보인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내리쬐는 태양, 그 아래서 잠시 눈을 감는다. 나는 어느새 선분홍 빛 아가미 안으로 들어와 있다. 탯줄을 끊어내기 전의 안락한 엄마 품과 행복의 감정을 기억해낸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여행이란 단어는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과 설렘을 만들어내는 묘함이 있다. 반복과 지속, 누적만 피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걱정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실수,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무엇으로 쌓이지 않고, 우연히 살짝 스친 송곳이 단지 우연일 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덜 해진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끊임없이 공허한 구멍을 메우는 반복의 지속이다. 애초에 인간의 삶에서 말.. 2019. 9. 26. 오랜만에, 폭설 머무르는 것과 움직이는 것 참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부는 맞바람도 그리 불쾌하지 않다. 밤새 내린 눈으로 소나무 가지마다 쌓였던 눈 뭉치가 바람에 밀려 툭툭 떨어진다. 소복이 덮여 숨 쉬고 있을 봄 새싹 생각도 난다. 석양으로 착각할 만큼 낭만적이 었던 빛은, 늘 그때쯤이면 얼어붙은 한강 표면을 튕겨져 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하얀 눈이 그 자릴 대신한다. 폭설이 내린 서울은 그 경계가 더 뚜렷해 세상을 완전히 양분해버렸다. 달리는 전철과 흐르는 물,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사람들. 문득 움직이는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차가운 눈에 눌려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건 움직이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오늘, 생각지 않은 폭설이 그대 마음에.. 2019. 9. 26. 머리 깎던 저녁 차가움과 따뜻함 잠바를 움켜쥐고 깃을 세운다.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먼저 들어와 내 빈자릴 차지한다. 서글프다. 어제 비가 내린 건지 낙엽들이 축축이 젖어 바닥에 얼어붙었다. 인도 옆 꽃이 피던 공간엔 얼마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았다. 추위가 온몸을 덮었지만 아직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창문 밖에서 머리를 자르며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명이 온통 형광등이어서 그런지 “다음에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보 같단 생각을 했다. 문에 달린 손잡이는 살에 붙여버릴 듯 차가워 들어갈지 말지 얼른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너 번 문이 왔다갔다한 후 완전히 멈췄을 때 정말 조용하고 따뜻한 공기가 그동안의 여러 생각들을 지운다. 잘리는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몰랐을 가위질 소리와 바리깡 기계음, TV의 .. 2019. 9. 26. 히말라야의 그 밤하늘도 이랬다. 별 하나에 집중하면 내가 빨려 들어갔고, 모두를 보면 별은 쏟아져 내렸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아파트 천장에 막힌 밤하늘을 상상하며 이 사진을 뚫어 저라 바라본다. 그랬었지, 싸한 찬바람이 콧속을 돌아들고 줄에 걸린 버팔로 고기는 아직도 달콤하다. 낮인지 밤인지 깨질듯한 별빛은 여기 히말라야에만 있는 것 같았고 안나푸르나는 새하얀 모습이 마치 빛 없이 존재하는 색이 마침내 있음을 완벽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 날, 히말라야의 그 밤하늘도 이랬다. 2019. 9. 26. 사람, 삶 퇴근길을 차분하면서 늘 소란스럽다. 어떤 일이 시작되기 전의 소란스러움과 흡사한 것이 하루가 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몇 번 했었다. 왁자지껄 이 소란스러운 곳을 지나며 분주한 움직임에서 우리가 마치 본질인 양 추구하는 얄팍한 목적의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각자의 하루를 사는 바쁜 사람들의 생활과 분, 초 속에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더 올바른가? 아니 어떤 삶이 우리를 – 나를 포함한 – 올바르게 만드는가? 그리고 서로의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가? 이 살아있는 오늘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얼까? 퇴근길. 하루를 마감하는 슈퍼마켓 복도를 지나면서 삶의 펄떡임을 느낀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2019. 9. 26.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우연히 새벽 출근길 버스에서 이 노랠 들었다. 마침 창 밖으론 지난여름 뜨겁고 북적북적했던 주말 농장 터가 보였다. 작년 말 새로운 토지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말 농장은 일 년만에 폐쇄되었다. 덕분에 비료를 뿌리고 땅을 두 번은 더 갈아엎으며 정성을 쏟았던, 나름 기름졌던 서너 평 정도의 우리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잡초가 무릎 높이로 무성히 자라 올랐다. 어슴푸레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수확철이던 가을의 그곳은 얼마나 북적이며 활기가 돌았는지 모른다. 농장 전체가 대충 수 백 평은 되었으니 말이다. 연신 씨와 모종을 심고 물을 길어 날랐다. 몇 개 열리지 않았던 딸기와 좀 더 심을 걸 했던 방울토마토, 파도 파도 끝없이 나왔던 고구마가 있었다. 사람들은.. 2019. 9. 25. 중국으로 떠나는 여행자/직장인을 위한 필수 팁 이 정도는 알고 가자. 들어가며 이 글은 실제 처음 중국에 잠시 지내게 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글로 엮은 것입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에 계셨거나, 중국을 더 잘 알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여기 있는 정보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님을, 더 좋은 해결책도 많다는 것을 미리 알립니다. 일부 정보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현지에서 느린 인터넷으로 검색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최대한 배제하고 텍스트로만 의도적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알면 도움되는 정보 인터넷 한국에서 데이터 로밍을 하면 하루 11,000원(VAT 포함)입니다. 1~2주, 혹은 한 달간 머물러야 한다면 큰돈 깨집니다. 하루 이틀은 모르겠지만 3일 이상 머물러야 한다면 China Uni.. 2019. 9. 25. 아이들과 가볼 만한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수도권 근교에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어떨까? 이곳은 1960~70년대 달동네를 테마로 인천 동구청에서 지난 2005년 10월 25일 건립한 박물관이다. 입장료도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으로 무척 저렴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크게 달동네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제 1, 2 전시실과 어린이들을 위해 뻥튀기 체험, 연탄 나르기, 수레 목마, 제기차기 등을 해볼 수 있는 달동네 놀이 체험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실 세심하게 꾸며진 세트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와도 무척 좋아하시겠다는 생.. 2019. 9. 25. 엄마가 딸에게 양희은의 목소리로 듣는 내 마음속 이야기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 가사 중에서 – 도대체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매섭게 밀어내고 소리를 지르던 사춘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잊혀질 무렵 이 노래를 들었다. 응어리로 담아 둔 십 대의 ‘나’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를 삼자대면하듯 쏟아낸 가사에서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엄마도, 그 시절의 나도, 서로 같은 말을 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던 시절들이 이제야 사실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 2019. 9. 25.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이진아의 노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1987년 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유재하는 이 1집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25살의 나이로 교통사고를 당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노래는 그 특유의 음색으로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진아는 피아노와 떨리는 숨소리로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제야 곡이 완성됐다. “만나지 못할 걸 서로는 알았을까?” 벌써 일주일째..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엔 이 마음을 풀어놓아야 좀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이진아의 이번 편곡은 유재하의 그것을 다시 부른 것이 아니며 선배 가수에게 들려주는 후배 가수의 답가가 아니다. 30년 전 그가 지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상념, 그리고 젊은 청춘의 고민을 덤덤히 털어놓았던 그에게, 이미 너무.. 2019. 9. 25. 나의 시선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역지사지. 치켜뜬 헤드라이트에 길을 걷다 눈이 너무 부셨다. 누가 주인일까? 에잇… 그러다 갑자기 난 어땠나 싶다. 난 내 차의 헤드라이트를 본 적이 있던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시선은 어땠나? 내가 얼마나 치켜뜨고 있는지 나는 몰랐지. 부끄럼 가득한 퇴근길 2019. 9. 25. 반복되는 것의 소중함 지겹고 어서 빠져나오고 싶은 것이 일상이지만, 사실 그런 일탈은 일상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마치 영원의 회기를 증명해주려는 듯 오늘도 버스는 오고, 평범한 일상이 사실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마워, 그리고 감사해 2019. 9. 25. 이전 1 2 3 다음